도종환 「가을 오후」 전문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 도종환 「가을 오후」 전문(시집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서)

 

그림=박경수

몇 해 전 어느 문학지에 실린 이 시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구절이 너무 좋아 한동안 책상 앞에 붙여놓고 들며 나며 읽고 또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시는 해탈 직전에 멈춘 언어라 했던가요. 이렇게 미적 충동과 지적 각성을 동시에 주는 말씀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세속을 일탈하여 조용한 산중에 거처를 마련하고 오롯이 평온한 고요 속에 든 시인만이, 매임 없이 자유롭게 자연과 존재에 대해 말하고 사유하고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얼마 동안이나 자연 속에 기거해야 가을이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고 또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올 수 있을까요. 얼마나 자연과 일체되고 동화되어야 들고 있던 내 겉옷을 가을의 어깨 위에 덮어줄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깊은 생의 한 의미를 깨닫게 되고, 존재와 영혼에 떨림을 주는 진실한 명상을 구할 수 있을까요.

도종환 시인의 저‘ 심원한 쓸쓸함’에 조금이라도 가까이하기 위해 우리는 시인처럼 자연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고, 또한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런 경지에 있는 것마저 의식하지 않는, 자기의 가장 훌륭한 덕성조차 스스로 느끼지 않는 시인의 높은 마음의 누대 위를 우리는 차마 바라보기도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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