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민노총 적극지원

지난 18일 아침 6시,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실에서 기습적인, 하지만 엄숙한 의식이 진행됐다. 50여명 참석자들의 결연한 표정은 이른 아침의 찬서리처럼 명징하게 느껴졌다.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충북본부은 이렇게 전국에서 4번째의 지역본부로 탄생했다. “당초 20일, 토요일에 출범식을 갖는 것처럼 정보기관에 흘려놓고 핵심 대의원들만 사전에 개별연락을 통해 18일 새벽에 모이도록 했다. 정부가 공무원 노조설립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원천봉쇄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택할 방법이다. 축하객없는 조촐한 출범식이었지만 공직역사에 한 걸음을 내딛는 심정으로 비장하게 끝마쳤다”
정세영본부장(45·청주시 흥덕구청 공무원직장협의회장)은 기습 출범식의 감회를 되새김하듯 입술을 다져 물었다. 전국 공무원노조는 이미 지난달 23일 창립 대의원대회를 열고 발대식을 강행했다. 경찰은 공무원법위반 혐의를 내세워 노조출범을 이끈 집행부 5명을 구속하고 3명을 수배한 상태다. 따라서 충북지역본부의 발족은 또다른 희생을 각오한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미 전국 부위원장으로 피선된 청원군청 김상걸씨(청원군공무원직장협의회장)가 불구속 기소돼 청주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청원공직협 회장 재판진행중

“전교조가 합법화 과정에서 1400명의 조합원이 해직, 징계 등으로 희생을 당했다. 우리도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라는 생각은 갖고 있다. 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하위법인 공무원법을 내세워 막으려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힘과 명분이 우리쪽에 실려있기 때문에 전교조보다 빨리, 결론이 나리라고 기대한다”
특히 창원, 울산, 수원시등 4개 지방의회에서 공무원 노조에 대한 환영논평을 내기도 했다. 또한 개혁적 성향을 가진 4∼5명의 단체장들도 공무원 노조의 당위성을 알리는 성명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보수 색채가 강한 충북의 지역정서상 이 정도(?)의 후원은 기대조차 하지 않지만 청주시청 직장협의회의 노조불참 선언은 못내 아쉬움이 크다. 대외적으로 ‘자중지란’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노조 결성여부에 대한 직장협 설문조사 결과 노조전환 자체는 전폭적으로 환영하지만 비합법적 노조전환은 찬반이 엇갈렸다. 청주시직장협 집행부는 이런 설문결과를 내세워 노조출범을 반대하고 있다. 충북도청 직장협도 합법적인 노조일 경우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OECD국가 24개국 중 공무원노조를 불법화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지방자치가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직업 공무원제가 정착되야 하고 노조활동이 이것을 가능케 할 수 있다”

’도청 앞장서야 전체 확산’

정본부장은 충북인의 소극성과 눈치보기에 대해 답답증을 호소했다. 청주시와 충북도 직장협의회의 노조불참에 대해 직장협 홈페이지에는 비판내용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필사즉생의 각오가 없는 집행부는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본부장은 지역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연대 틀을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지난 93년 흥덕구 직장협 회장으로 영문도 모르게 떠밀려(?) 선출된 것이 벌써 10년전 일이 됐다.
전국 모임을 거듭하면서 공직협의 존재 의미와 전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됐다. 나 또한 사법처리 대상이 돼 감옥에 가더라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내게 맡겨진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또 내가 없더라도 이 자리를 대신할 많은 동료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다”
공무원노조 충북본부에 참여한 도내 행정기관 직장협은 상당구청, 흥덕구청, 상수도관리사업소, 청원군청, 진천군청 등 모두 5개소로 회원수는 1200여명에 이른다. 이밖에 청주지법, 충북대·충주산업대, 농산물품질관리원 직장협이 충북본부와 연대활동을 벌이며 직능별로 노조를 추진하고 있다.

적십자모금·선거차출 제도개선

“정부는 오는 2006년부터 단체교섭권, 단결권을 인정해 주겠다며 공무원 노조설립을 막고 있다. 하지만 노동3권은 머리, 허리, 다리처럼 따로 분리해서는 안될 성질의 것이다. 공무원 파업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우려가 있지만, 필수 기간산업은 강제조정 조항 때문에 실행하기 어렵다. 강성이라고 걱정했던 교원노조도 합법화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파업 한번 없지 않았는가?”
충북본부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충북정치개혁시민연대와 함께 공직자 선거개입에 감시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도선관위 직원으로부터 불법유형 등에 대한 사전교육을 받아 민선시대의 공직자 줄서기 풍토를 막아 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노동자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직업 이기주의로 오해받지 않도록 ‘공무원 제자리 찾기운동’을 조심스럽게 전개하고 있다.
“공직부패, 무사안일을 벗어나자는 의식개혁과 함께 6급이상만 되면 관리자급으로 실무에서 손을 떼려는 그릇된 업무풍토를 바꾸어야 한다. 그동안 직장협을 통해 적십자회비 모금방식을 목표대비가 아닌 자율방식으로 전환했고 선거 차출인원도 대폭 줄이도록 했다. 지난 98년 총선 때 2개월간 10명의 직원이 차출됐으나 이번 지방선거에는 2명으로 줄였다.
정본부장은 오는 27일 지역 시민단체와 연대한 공대위 주최로 공무원노조 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장외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직장협이라는 주어진 금을 벗어나 본격적인 노조활동에 돌입한 것이다. 정본부장의 진지함과 넉넉한 웃음, 그리고 헤진 와이셔츠 깃은 공무원노조의 건강한 미래를 읽어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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