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소장, 개방형 공모제 항의방문기 페북화제
이시종 지사"잘하겠다, 이번 임용만은 이해해달라"

31일 지사실 앞 복도에서 여성 공무원들이 지역 여성단체의 '오빠문화' 비유 성명에 항의시위를 벌였다.

도내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31일 오후 5시 충북도청 지사실을 방문해 여성정책관 개방형 공모에서 공무원을 내정한 것에 항의했다. 여성단체 관계자 6명이 지사실을 방문했을 때 도청 여성공무원 20여명이 미리 지사 부속실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사와 여성단체 관계자가 면담하는 동안 복도에서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는 것.

여성의 권리와 인권을 주장하기 위해 지사실로 항의방문한 자리에서 오히려 여성 공무원들에게 항의를 받은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이날 방문자인 김수정 소장(젠더 사회문화연구소-이음)은 '불편한' 상황에 대해 페북에 글을 올렸다. 아울러 이날 이시종 지사와 면담이 '이해와 공감을 넓히는데 실패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소장의 페북 글 전문을 옮겨본다.

어제 저는 시민단체, 여성단체의 일원으로 여성정책관 공무원 출신 내정과 관련하여 철회요구를 위한 항의방문에 동행 했습니다. 처음 가보는 도지사실 부속실에는 여성공무원들이 도열해 있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녀들의 싸늘한 눈길 앞에 잠시 참담했습니다. 공무를 제껴 두고 한달음에 달려와 분노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도지사 면담 내내 그들의 주의주장은 고성으로 인하여 면담을 진행하기 불편했습니다.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귓가에 철회하라! 사과하라! 이 말만은 명백히 들려왔습니다.

충북도청에 ‘오빠문화’가 만연하다고 한 전직 정책관의 발언에 대해 성명서에 인용한 사안을 두고 맥락 없이 시민단체가 여성을 비하했다고 뿔이 난 모양입니다. 저는 도청에 ‘오빠문화’가 만연한지 알지 못합니다.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성정책을 총괄하는 정책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다만 ‘오빠문화’가 만연하다고 많은 장소에서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도청의 만연된 이 가부장적 사고의 틀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정책과 교육으로 풀어야 하는 것 인거죠.

우리 사회 어느 곳도 가부장제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그럼에도 도청의 여성정책관 인선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지적한 것은 그들은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정책관의 자리에 ‘젠더문제’에 있어 정확한 식견을 가진 전문가를 발탁하여 성평등정책을 제대로 풀어주십사 하는 요구의 자리에 “도청 여성공무원을 비하”했다고 나선 그녀들의 용감한 행동에 함부로 돌 던질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여성고위직은 ‘여성정책관’이 유일한 자리인 현실 앞에서 유리천정을 타파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이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인사정책에 힘써달라. 그 이전에 민간개방형 자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전문가를 기용하여 도정 개혁을 위한 물꼬를 막지 달라는 요구가 저는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지사와의 면담은 이해의 공감을 넓히는데는 실패한 것 같아보입니다.
“잘하겠다고, 신경 쓰겠다고, 그러나 이번 여성정책관 임용만은 이해해 달라고”. 이것이 도지사의 반복되는 답변이었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고성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도지사가 시민단체를 면담하는 자리에 도청여성공무원이 몰려와 시위를 하는 모습 아주 민주적이지 않습니까? 자기의 존재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때 분연히 일어나는 모습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는 그녀들이 조직문화에서 부당함이 있을 때 이렇게 항상, 분·연·히 일어나길 기대하고 지지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 어디선가 많이 봐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단체에서 문제제기를 하면 의견이 다른 여성을 내세워 정당성을 확보하자는 방식입니다. 내가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면 싸움의 상대는 부당한 행동을 한 행위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용인되는 걸 묵과한 조직의 문화입니다. 그것을 듣고 ‘부당하다’고 이야기 한 사람이 아닙니다. 맥락을 무시하고 적을 이상하게 규정하는 방식은 우리가 늘 봐오던 방식이어서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왜? 너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위계적인 우리문화는 힘 가진 자의 말이 법이 되므로 그에 따라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잘하겠다는 도지사님의 말씀에 잘하겠다는 추상적인 답변으로는 구체성을 담보할 수 없음으로 도청의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도민에게 공고해 달라 요청했습니다.

도청 여직원 여러분! 당신들을 비난할 수 없을 지경으로 우리 사회는 아직도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여전히 공고화된 가부장제 사회임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한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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