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편 충청리뷰 발행인

지역의 사학을 대표하는 대학 총장이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광장에서 초등학생 자녀의 생일파티를 열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뷔페와 함께 에어바운스 등 각종 놀이기구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언뜻 해외토픽에서나 접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꼭 호화판이 아니더라도 다중에게 공개되는 야외에서의 생일파티는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버겁다. 우리도 이젠 이런 문화에 익숙할 때가 되었다고 자위하면서도 사적공간이 아닌 공공의 장소에서 이같은 일이 있었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보다도 훨씬 더한 초호화 생일파티가 비일비재한 국내 현실에서 너무 고리타분한 생각은 아닐까 하는 자책도 들었다.

한 청주시의원이 평소 자신의 의정과정에서 누구보다도 업무연관성이 깊은 업체 관계자와 해외골프여행을 다녀왔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이를 음모론으로 포장해 역공세를 펴는 당사자의 모습이 역겹다.

이 사안의 팩트는 그가 동행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과 부적절한 골프여행을 즐겼다는 것이고 해당 업체는 왜 그랬는가 하는 도덕과 양심의 문제이다. 이해 관계자들의 공방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을 너무 같잖게 여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다.

문제의 폐기물업체와 청주시 그리고 시의회 사이의 유착, 이른바 삼각관계는 삼척동자가 들어도 복장이 터질 판이다.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토록 오래된 민원에도 불구 왜 아직까지 제대로된 수사가 한번도 없었느냐는 점이다. 적폐를 말한다면 이보다 더한 것도 없다.

사회의 모든 갈등과 부조화는 ‘나는 잘나고 다르다’에서 출발한다. 이념의 좌우가 그렇고 빈부의 격차가 그렇다. 동일한 여건의 동일한 신분이라면 당연히 상호 괴리감은 덜하다. 지상낙원이라 착각했던 사회주의를 파멸시킨 것도 인간사회의 어쩔 수 없는 이 ‘다름’ 즉 차별을 근원적으로 배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총장과 시의원이 평소 ‘나는 다르다’를 체화하지 않았다면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 총장의 뒤늦은 후회와 사과는 그나마 진정성이 엿보여 시민들의 상실감은 덜하다.

덴마크는 우리에게 살기좋은 나라로 각인돼 있다. 이 나라가 국민행복지수의 최상위권에 늘 랭크되는 결정적 요인은 전 세계가 부러워한다는 복지와 교육시스템이다. 최근엔 이를 배우고 연구하기 위해 우리나라 전문가들도 뻔질나게 찾고 있다.

하지만 덴마크 사람들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정작 다른 데에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얀테의 법칙’이다. 얀테(Jante)는 우리나라의 아주 흔하고도 평범한 철수와 영희라는 이름으로 해석된다. 이 나라 국민들은 절대로 자신을 ‘나는 남과 다르다’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른바 ‘철수의 법칙’과 ‘보통 사람들의 법칙’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1930년대에 덴마크 유명작가의 소설에서 비롯돼 북유럽 정신의 모태가 되었다는 얀테의 법칙 10개 조항을 보면 그 어휘만으로도 참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첫째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둘째 네가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셋째 네가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넷째 네가 남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등 등은 동화의 나라답게 아주 쉬운 워딩(wording)으로 표현됐지만 그 철학적 함의는 마치 드넓은 바다와도 같다. 이렇게 철수의 생각과 영희의 사고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은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가 곧 행복이요 즐거움인 것이다.

헬렌 러셀이라는 영국의 여성 저널리스트가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경험하기 위해 현지에서 직접 1년을 살아본 후에 책을 내 얼마전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된 적이 있다. 여기에 그녀가 덴마크 식으로 사는데 필요한 열가지 팁을 제시하고 있는데 정리하면 이렇다.

1.상대에 대한 무한한 신뢰 2.주변 작은 것에 대한 기쁨과 행복 3.끊임없는 몸의 움직임 4. 삶에 늘 미적 감성을 일깨울 것 5.결정과 선택은 단순화할 것 6.주변의 현상들에 대해 늘 자랑스러워할 것 7.누구보다도 가족 존중 8.남녀가 하는 일을 똑같이 존중 9.모든 삶을 놀이처럼 즐기기 10. 주변과 이웃에 대한 나눔의 삶 등이다. 이 것들을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예상은 했지만 문재인 정권의 초대 내각이 국회 청문회 앞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위장전입으로 대표되는 각종 비위가 총리와 장관 후보들에게 속속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사람은 아니겠지 믿었던 이들조차 과거의 편법과 일탈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지지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제 아무리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지만 ‘우리는 너희들과는 다르다’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지금같은 정국경색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국민들이 보기엔 이명박근혜 정권의 각료 후보들이나 지금 청문회를 맞고 있는 문재인의 사람들이나 오십보 백보라는 것이다. 다만 국민들이 바라는 건 과거처럼 나는 다르다는 인식으로 특권과 특혜를 누릴 게 아니라 그 다름의 폭을 줄이려는, 나도 남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얀테의 법칙과 철수의 법칙을 잊지 않으려는 공인으로서의 자세인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나라는 저절로 깨끗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초기 갖가지 파열음에도 불구 80%가 넘는 초유의 지지도를 보이는 이유는 다름아닌 문 대통령의 ‘나는 국민들과 다르지 않다’는 정직한 소통과 서민행보 때문이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우리는 절대로 잘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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