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왜 민간인을 적으로 삼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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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왜 민간인을 적으로 삼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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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0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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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돼 왔던 진실에 다가가는 신기철의 <국민은 적이 아니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류정환 시인, 충북작가회의

국민은 적이 아니다 신기철 지음 헤르츠나인 펴냄

어린 시절, 시골 동네에 흑백 TV를 들여놓은 집이 한 두 곳뿐이던 시절, 어린 것들을 몸달게 했던 전쟁드라마 <전우>를 기억한다. 대체로 바보 같은 인민군들을 귀신같이 해치우며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국군 소대원들의 활약상을 보고 난 다음날이면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사기가 충천해서 공터로 모였다. 저마다 손에는 작대기를 잇대어 만든 총이 들려 있었다. 개중에 손재주가 좋은 아이는 숫제 나무를 통으로 깎아 제법 그럴듯한 걸 가져서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렇게 소년 병사가 되어서 앞산 뒷산을 누비며 해가 지는 줄 모르고 전쟁놀이를 즐겼다. 편을 나누었을 때 국군 편에 들어야 한층 용맹스러워지는 건 물론이었다.

한국전쟁 때 국군은 정말 그랬을까? 신출귀몰, 용맹무쌍, 공명정대, 드라마를 통해 각인되어 아직도 뇌리 속에 남아 있는 국군의 이미지는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까? 신기철의 저서 <국민은 적이 아니다>는 그 물음에 아프게 고개를 흔든다. 저자는 전혀 다른 활약상, 자국 국민과 전쟁을 벌인 국군의 민낯을 보여준다. 전쟁 중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됐음을 상기시키며 저자는 묻는다. 국군은 왜 자기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댔을까, 그 억울한 죽음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가해자와 책임자는 누구일까.

이 책에는 한국전쟁 당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앞과 뒤, 그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겨 있다. 노무현 정부 시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기록조사자로 활동한바 있는 저자는 국방부에서 모두 11권으로 편찬한 <한국전쟁사>와 참전 군인의 회고록, 학살 지역 주민의 증언 등 각종 기록을 면밀히 비교·검토함으로써 그 동안 한국사회가 모른 척하거나 의도적으로 은폐해 왔던 진실에 다가간다.

전쟁 발발 직전을 보자. 당시 남북 양측의 전쟁준비는 기정사실이었다. 전선 곳곳에서 국지적인 전투도 잇따랐다. 남측 군 수뇌부는 첩보원들로부터 남침이 임박했다는 정보를 받고 있었다. 정보 중에는 심지어 침공 예정일이 6월 24일 아니면 25일이라는 것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런 비상 상황을 앞두고 군은 6월 24일 비상경계령을 해제하고 장병들에게 휴가를 주어 내보냈고, 사단장들은 육군회관 장교구락부 준공파티에 몰려갔다. 그날 오후에 군 수뇌부들의 긴급회의가 있었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 장의 ‘지옥도’를 보는 느낌

이런 어이없는 일마저도, 6월 16일부터 10일 동안 최전방 포천 지역에서 1개 연대 규모의 방어 병력이 통째로 빠진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남침을 유도했다는 음모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사실 때문이다. 남한 정부와 군도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한 여러 가지 전략과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지만, 1950년 6월 19일 미 국방부 소속 참모 도널드 맥비 커티스가 만든 ‘우발계획 SL-17’로 불린 시나리오는 주목할 만하다. 즉, 인민군이 침공할 경우 남으로 후퇴해 낙동강 유역에서 방어선을 구축하며, 낙동강 전선이 강화된 후 반격을 지원하기 위해 인민군의 측면을 우회하는 상륙작전을 펼친다는 것. 이 계획이 한국전쟁의 초기 과정과 정확히 일치하는 건 우연일까?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긴급명령 제1호로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을 공포한 것이었다. 흔히 ‘비상조치령’으로 불리는 이 법령은 국민보도연맹원, 형무소 재소자, 작전지역 피난민, 부역 혐의자 등 민간인을 대량 학살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침략하는 적보다 적에 협력할 것으로 보이는 국민들에게 더 적개심을 가졌던 것일까? 6월 26일 ‘피난민 제1호’로 대전으로 달아난 대통령은 녹음방송으로 곧 유엔군이 와서 적을 물리칠 거라고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이튿날 한강 다리를 폭파하여 피난길을 막았다. 국민들의 생사는 아랑곳 않고 대통령은 전쟁 발발 이레째인 7월 1일 목포를 거쳐 부산으로 피신했다.

국군은 전략에 따라(?) 소극적인 방어 전투를 벌이며 후퇴를 거듭했는데, 주둔하는 작전지역마다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총알이 없어 전투를 치를 수 없었다는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전투가 거의 없었던 호남지역도 예외는 없었다. 후퇴할 때는 부역할 것 같다는 이유로 처형했고, 수복 후에는 부역했다는 혐의를 씌워 처형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저자의 판단처럼, 비열하고 무능한 정부가 패전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긴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한 장의 ‘지옥도’를 들여다본 느낌으로 가슴이 떨렸다. 놀랍지 않은가. 1952년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헌법위원회가 ‘비상조치령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는 것도 놀랍고, 불법으로 저질러진 학살 피해자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놀랍다. 무엇보다, 분단 상황을 핑계로 논의 자체를 금기시했던 한국전쟁의 진실에 한 발 다가서고자 했던 저자의 끈질긴 노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자초지종을 아는 것이야말로 참된 용서와 화해의 첫 단추이며 이 땅에서 파멸의 축제를 영원히 추방하는 길임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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