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노총과 경총이 서로 합의…북유럽 최고의 쇼핑몰에는 도서관

윤송현의 세계도서관기행
(10)북유럽 편

스톡홀름은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린다. 내륙에 자리잡은 것 같지만 바다가 내륙 깊숙하게 물길을 내고 들어와 도시 주변을 감싼다. 거대한 유람선이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발트해를 가르며 핀란드의 헬싱키와 투르크,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의 탈린, 라트비아의 리가를 연결한다.

오래전부터 스톡홀름은 북유럽의 중심도시였고, 오늘날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스톡홀름 중심가에는 배낭여행객을 위한 호스텔(Hostel)이 많다. 호스텔에서는 방이 아니라 베드(Bed)를 산다. 이층침대가 빼곡하게 자리잡은 다인실의 침대는 가난한 여행자들에게는 더없이 아늑한 둥지가 된다. 주방과 휴게실, 화장실, 샤워실 등은 모두 공용의 시설이다. 이곳에서 세계의 여행자들은 서로 가진 정보와 음식을 나누며 세계인으로 변해간다.

짤츠쉐바덴협약이 열렸던 그랜드 짤츠쉐바덴 호텔.

호스텔에서 아침을 챙겨먹고 짤츠쉐바덴이라는 곳에 가보려고 길을 나섰다. 스웨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최연혁 교수의 <우리가 만나야할 미래>라는 책에서 제일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이 짤츠쉐바덴협약(Saltsjobaden agreement)이었다. 노총(LO)과 스웨덴경영자총협회(SAF)가 상생협약을 한 것이 스웨덴의 오늘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스톡홀름 어디에서도 그 대단한 짤츠쉐바덴협약에 관한 기념물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협약이 이뤄진 짤츠쉐바덴이라도 직접 찾아가보고 싶었다.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차로 30분 남짓 걸리는 바닷가에 짤츠쉐바덴이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슬루센(Slussen)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 스톡홀름 시민이 가볍게 나들이 가는 교외 유원지 정도. 그곳에 오래된 호텔이 하나 있는데, 그랜드호텔 짤츠쉐바덴이다.

짤츠쉐바덴협약 이후 찾아온 평화

호텔의 역사를 훑어보니 이 호텔은 1892년 발렌베리에 의해 만들어졌다. 발렌베리가는 오늘날 스웨덴을 대표하는 재벌가문이다. 이 호텔의 준공식에는 스웨덴의 함대가 호텔 앞바다에 닻을 내리고 축포를 쏘았다고 한다. 호텔 앞까지 철도가 부설된 것도 이 호텔이 얼마나 대단한 곳이었는가를 보여준다. 호텔은 전쟁 중에는 평화협상장이 되었고, 국제 수뇌부들의 회담장으로 자주 쓰였다.

이 호텔에서 1938년 12월 20일에 스웨덴 LO와 SAF가 서로를 인정하고 협의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는 역사적인 협약을 맺은 것이다. LO와 SAF는 서로를 인정하고,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서로 협의를 통해 노사의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합의하였다.

대단한 일이다. 서로를 인정한다는 것이 아닌가. 기업가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 대표로서 LO를 인정하고, LO는 기업가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노동자의 권리에 기반하여 정당한 주장을 해나가고, 기업 활동을 위해 필요하면 스스로 양보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법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문제가 있을 때는 늘 협의를 통해 조정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법이 아니라 협의를 근거로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이후 오랫동안 스웨덴에서는 노동관련법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협약이후 산업현장에 평화가 찾아왔다. 파업은 거의 없을 정도로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단위 사업장에서 쟁의가 발생할 경우에 LO에서 적극적으로 중재를 하였고, 필요하면 파업을 철회시키기도 했다. 이 협약으로 산업평화가 찾아왔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경제가 발전한 데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더 의미있는 것은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중시하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그 사회의 핵심적인 가치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이 협약의 정신을 지켜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사회 구석구석에 공개념과 평등의 정신을 심어나갔다. 보편적 복지제도를 도입하여 높은 수준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였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구현하였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크게 확대되었고, 교육은 적성을 중시하고, 자립을 중시하는 창의적인 교육이 자리잡았다.
 

SGS 인증 별 네 개 쇼핑몰 나카포럼 입구의 도서관.

쇼핑몰 1층에서 만난 도서관

스웨덴의 복지는 ‘일하는 복지(Workfare)'라고도 불린다. 사람들은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해서 세금을 내고, 연금을 내서 공공을 유지하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한다. 스웨덴 정부에서 제일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실업률이다. 실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직업교육을 시키고, 재취업을 알선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도 바로 스웨덴에서 시작된 것이다.

좋은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스웨덴에서 얻은 지혜는 바로 노동이 당당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스웨덴에 대해 연구하고, 스웨덴의 복지제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짤츠쉐바덴 협약부터 언급하게 되는 것이다.

짤츠쉐바덴 호텔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웨덴의 부유층이 몰려 산다는 나카콤뮨(Nacka kommun)이 있다. 스톡홀름의 강남이라고나 할까. 인구 10만 여명의 독립된 자치단체이다. 콤뮨의 중심에 있는 나카포럼(Nacka Forum)은 스웨덴 최대의 쇼핑몰의 하나이며, 세계 최고의 인증 시스템인 SGS평가에서 북유럽 최초로 별 네 개 등급을 받은 쇼핑몰이다.

그렇게 대단한 쇼핑몰은 어떤 모습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중앙출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은 Bibliotek이다. 1층 출입구 앞에 그것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람들을 맞이하는 도서관. 처음에는 충격적이었지만 다시 보니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 당연한 것을 넋을 놓고 보는 사람이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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