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 중용 불구 '탕평' 인사 주목
새 정부 충북 입각 1호 후속인사 기대감 커져

김동연 경제부총리 내정자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수장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 충북 출신 김동연(61) 아주대 총장을 내정했다. 김 내정자는 고졸 출신의 입지전적인 고위관료이며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중용됐던 인물이다. 따라서 김 내정자의 경제부총리 발탁이야말로 새 정부 '개혁'  '탕평' 인사의 정점이라는 평이다.

김 내정자는 음성 금왕읍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으나 장남을 공부시키겠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울 친척집으로 보냈다는 것. 하지만 친척도 청개천 판잣집에 사는 곤궁한 형편이었고 김 내정자는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는 것. 11세 때 부친마저 작고해 홀로된 어머니와 세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소년 가장이 됐다. 결국 어렵게 덕수상고를 졸업하자마자 18세 나이로 은행에 취업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국제대학교 법학과 야간부에 진학했고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동시합격해 83년 경제기획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김 내정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32살이셨는데 그때부터 제가 소년가장이 됐다기보다 그때는 어머니께서 정말 고생을 하셨고요. 제가 실질적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고,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17살 때부터 소년가장 역할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무허가 판자촌인 청계천으로 쫓기듯이 갔고. 2년 뒤에는 지금의 성남시인 경기도 광주의 허허벌판에 강제이주를 당해서 천막에서 살았다. 맏이고 동생들이 있고 어머님, 할머님이 있었으니까 빨리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그런 책임감은 많이 있었지만, 너무 어려서 뾰족한 수가 없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한 능력을 인정받았고 1994년 김영삼 정부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2002년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일했다. 하지만 곧바로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대학원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나가 요직에서 배제됐다.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 기획예산처로 컴백해 활동하다 이명박에서 청와대 재정비서관,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승승장구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출범직후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으로 1년 5개월만에 '일신상의 이유'를 내세워 스스로 사퇴했다. 당시 정치인 출신인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경제사령탑인 경제부총리에 임명되자 스스로 거취를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공직에서 물러난 김 내정자는 일부 학교의 요청으로 강연활동을 하다 2015년 2월 아주대 총장으로 임명됐다. 새 정부의 김 내정자 발탁 배경에 대해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참여정부 경제실세에서 낙마한 변 전 실장 기획예산처 재직시설 김 내정자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캠프의 경제보좌역을 맡은 변 전 실장이 보수정권에 중용된 인사중에 업무능력이 탁월한 김 내정자를 추천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국무조정실장 사퇴 이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측에서 국회의원, 지사 출마 권유가 있었으나 이를 고사했다. 심지어 지난해 새누리당이 위기에 빠지면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단수 후보로 김 내정자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과 약속 때문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지 못하겠다"고 고사하자 정 원내대표는 정치부 기자들에게 "내가 살면서 이렇게 양심적이고 맑은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평가하기도. 김 내정자가 집권여당의 러브콜을 수차례 고사한 것도 이번 발탁인사에 참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내정자의 국무조정실장 재직 당시 '아들 상(喪)'에 대한 일화도 유명하다. 2013년 10월 미국 유명대학을 졸업한 아들 김모씨(당시 28세)가 백혈병으로 숨졌다. 하지만 2년간의 간병 생활에도 불구하고 국무조정실 간부들은 물론, 비서들도 아들의 투병 사실을 몰랐다는 것. 심지어 병상의 아들에게 골수를 이식해 줄 때도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다"고 말하고 하루 휴가를 냈다고. 아들이 숨을 거두자 부고(訃告)를 내지 않고 가족·친지와 일부 지인의 조문만 받고 상을 치렀다. 

장례가 있던 당일에도 오후에 국무조정실로 돌아가 다음날 발표할 원전 대책을 논의했다는 것. 다음날 오전 정부세종청사 1동 국무조정실에서 계획대로 원전비리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몇일 뒤 김 내정자는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발송했다. 아들 상을 알리는 글에서 "고백하자면 스물여덟 해 함께 살아온 애를 이렇게 보낸다는 것이 지금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다.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기도 하고 심장에 큰 구멍이 뻥 난 것 같기도 하다"며 절절한 심경을 밝혔다. 직원 이메일을 통해 김 내정자의 아들상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정·관가의 아쉬움과 함께 투철한 공직의식이 회자되기도 했다.

2011년 김 내정자가 정부예산의 칼자루를 쥔 기획예산처 예산실장 재직 당시 충북도는 예산 배정에 상당한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종 지사는 김 내정자 인사발표에 대해 “새 정부 인사발표가 날때마다 조마조마 했는데 이제 충북의 원을 풀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김 내정자는 머리도 영리하고, 예절도 바르고, 대인관계도 좋고, 자기 관리도 깨끗한 사람이다. 나무랄 데 없는 최고의 모범공직자”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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