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요즘은 우리 지역에서도 중국 얘기가 흔하게 들린다. 나라를 옥죄는 사드 문제와 경제보복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노영민 전 국회의원의 주중대사 내정이 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초기 조각과정에서 지역출신 인물, 그것도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그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자체가 어쨌든 많은 흥미를 안기는 것같다.

이에 대한 언론보도는 예외없이 정형화된 느낌이다.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신임하는 그를 주중대사로 내정한 배경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우선 그렇다. 꼬일대로 꼬인 사드문제와 중국의 대 북한관계, 그리고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과 연관지어 이른바 대통령의 복심인 노영민에게 ‘모종의 역할’이 기대된다는 등의 긍정론이 대부분이다.

여기엔 “어려울 때 가장 가깝게 의견을 구하는 사람이 노영민”이라는 과거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꼭 양념으로 가미된다. 이만큼 대통령이 신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노영민의 주중대사 내정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폭발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문제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일방적인 정서다. 그들의 실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 우선 자연환경부터가 불가사의한 것들이 많은데다 그들의 삶 자체도 획일적인 잣대로는 결코 이해되지 않는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류의 최대 상대국가로 각인되며 우리나라 시장경제를 주무르는가 싶더니 돌연 토라지는 모습이 마치 어린애들 앙탈을 보는 것같다.

지난 3월에는 충북과도 친숙한 프로골퍼 김해림선수가 중국에서 열린 KLPGA 대회에서 우승했는데도 그녀가 미국에 사드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 소속이라는 이유로 중국측의 주관 방송사는 경기 내내 김해림의 전면(前面) 모습을 단 한번도 내보내지 않는 옹졸함을 보였다.

2014년 10월 청주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사우나 업소가 ‘중국인 단체입장 불가’라는 현수막을 입구에 내걸었다가 큰 논란을 빚은 것이다. 중국관광객들이 너무 시끄럽고 지저분하게 시설을 이용하는 바람에 일반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기자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발상이었다지만 파장이 컸다.

중국 근대화의 사상적 상징인 루신(魯迅)은 이젠 고전이 된 자신의 책 <아Q정전>을 통해 중국의 3대 난맥상을 불결함과 무질서, 소란스러움으로 적시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면서 통렬한 자아비판을 가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태어나 대만으로 건너간 작가 보양(柏楊)이 써 무려 20여년이나 대륙에서 금서로 묶였던 <추악한 중국인>은 중국인의 국민성에 대해 ‘더럽고 지저분하고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무질서하고 시끄럽고 서로 불신하며 책임지지 않는다’라고 표현해 당대에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지만 나중엔 국가개조의 바이블로 통하기도 했다.

중국으로선 여전히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는 이같은 국민성을 굳이 거론하는 이유는 현재 중국사회를 가장 실체적으로 이끈다는 그들의 관시(關係)문화를 들춰보기 위해서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꼭 거쳐야 하는 시행착오의 하나, 즉 중국에선 정·관계 인사와의 인맥이 없으면 어떠한 사업도 힘들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그들의 관시문화는 루신과 보양이 그토록 경멸하고자 했던 중국인의 기질과도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워낙 드넓은 땅덩어리에서 살다보니 어지간한 무질서와 불결함, 이기심은 시쳇말로 건도 안 된다. 당연히 자기중심적이 될 수 밖에 없고 이를 엮어주는 것이 사람사이의 관계이다. 그들은 평소 친분을 다지며 서로 충분히 알아야 비로소 믿음을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과의 관계를 사칭하는 사기가 가능하지만 중국에선 시진핑을 내세우는 사기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노영민의 주중대사 내정 소식에 가장 권하고 싶는 얘기는 바로 이 것이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향후 역할이 기대되고 또 정치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예단한다면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전임 정권에서 주중대사를 지낸 인사들이 하나같이 정권의 최측근임에도 불구, 나중에 정치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대통령과 가깝다’는 신분을 무기로 운신폭을 넓히려 했지만 ‘관시’를 중시하는 중국 고위관료들은 콧방귀도 안 뀐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주중대사가 대통령 측근들의 무덤이라는 속설마저 나돈다. 당사자들이 현지에서 국익보다는 귀국 후를 대비한 ‘자신의 정치’에 몰두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 배경엔 이처럼 중국의 관시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데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한국에선 권력자와의 관계를 내세우면 만사가 다 형통이지만 중국에선 3자보다는 당사자끼리의 평소 교류가 더 중시된다.

롯데가 사드문제로 엄청난 보복을 당하면서도 중국사업장을 폐쇄하거나 철수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도 그렇다. 사드 갈등이 잘 극복되면 롯데는 곧바로 관시문화의 최대 수혜자가 될 공산이 크다. 철저하게 탄압했는데도 흔들리지 않고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했으니 이보다 더한 ‘믿음’은 없다. 새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삼성과 현대 SK 등의 그룹회장과 고위경영진들이 경쟁적으로 대거 중국으로 날아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면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노영민의 중국대사 내정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그는 3선을 지낸 중진에다 권력의 핵심까지도 경험했지만 처신에 있어선 결코 정치인답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액션(action)’이 약한 대신 논리적이고 학자스럽다. 정치인들이 의례적으로 내는 책 중에서도 노영민이 쓴 책은 돋보일 정도로 사료·자료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기에 그가 실제로 주중대사로 임명될 경우 그의 활동은 정치적 배경보다는 순수하게 본인의 식견으로 이루어질 개연성이 높다.

문제의 ‘관시’를 고려하더라도 그는 장점이 있다. 이미 여러 작품을 발표한 시인으로서 한시(漢詩)에도 조예가 깊다. 지난 2013년엔 한국과 중국 의원들 간 바둑대회를 주관해 상호우의를 돈독히 했다.

정작 노영민이 중국대사로서 기대되는 건 따로 있다. 정치적 영역보다는 경제분야의 역할에서다. 사드 문제는 우리나라 경제에 큰 부하(負荷)를 안기고 있지만 중국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의 거의 70%는 중국에서 소비되지 않는다. 재가공을 거쳐 미국과 유럽 등 세계에 수출되며 중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은 조만간 중국에도 부메랑이 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경제논리가 절실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영민은 체질적으로 경제통이다. 경영학을 전공했고 운동권 시절엔 현장에서 노동운동도 주도했다. 스스로는 전기(電氣)라는 전문분야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일굼으로써 실물경제에 누구보다도 밝다. 2011년 민주당 시절엔 경제특보로 활동했으며 19대 국회에선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맡아 맹활약했다. ‘노영민의 중국대사’는 의외로 정치보다는 이처럼 경제분야에서 해법이 나올 수도 있다.

“중국은 해답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문제로서 주어진다. 그 문제를 잘 풀면 합격하고 못 풀면 떨어지듯이 인생의 굴신(屈伸·굽힘과 폄)이 결정되고 국운의 흥망이 결정된다. 중국은 인간 상상력의 총화라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광막한 무형의 장(場)이다. 이 장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리는가 하는 것은 그것을 인식하는 자의 틀에 따라 결정된다.” 중국전문가 도올 김용옥이 자신의 책에 남긴 말이다.

김용옥의 통찰대로 주중대사로서 노영민의 역할은 단순히 대통령 측근이라는 정치적 메리트가 아닌 본인의 ‘인식의 틀’에 의해 빛을 볼 것이다. 그 결과가 앞으로 어떠한 그림으로 나타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우리로서는 문재인 정부의 실제적 첫 충북출신 발탁이라는 점에서 꼭 성공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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