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희생자 베트남 이주여성 얘기 <세월>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나경 전 꿈꾸는책방 점장

세월 방현석 지음 아시아 펴냄

3년 전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다섯 살 여자아이를 승객들이 끌어 올려 구조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아이는 한 살 위 오빠와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가는 중이라고 했다. “오빠가 구명조끼를 벗어서 입혀줬다”는 아이의 말과 배가 기우는데도 자신보다 어린아이를 먼저 밀어 올린 승객들의 이야기가 비통함 속에서 눈물과 감탄을 자아냈다.

얼마 뒤 아이의 엄마가 싸늘하게 물 위로 떠올랐다. 아빠와 연년생 오빠는 찾지 못한 채 다섯 살 아이는 그렇게 희생자의 가족이자 미수습자의 가족으로 남았고, 차츰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그리고 아이의 가족은 세월호 3주기 즈음 방현석 작가의 중편 소설 <세월> 속 인물이 되어 돌아왔다.

소설은 아이의 외할아버지인 쩌우(소설 속 이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다. 베트남 까마우에서 어부로 살고 있는 쩌우는 첫째 딸 린(소설 속 이름)이 한국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내키지 않아 결혼식에도 가지 않는다. 그러나 결혼 후 한국인으로 귀화한 린은 두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쩌우도 뒤늦게 딸과 사위를 인정한다. 그렇게 8년이 지나 딸네 가족이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며 제주도로 간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되고 만다.

세월호 소식을 전하는 한국뉴스에서 손녀 시현(소설 속 이름)을 보고는 부랴부랴 한국으로 왔지만 한국말도 모르는 쩌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른 가족들의 뒤를 말없이 따라 다니며 희생자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 뿐. 며칠 뒤 딸의 주검을 찾지만 사위와 손주를 찾아 합동 장례를 치러 줄 마음에 아버지는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렇게 1년 남짓 한국에 체류하며 겪은 이야기가 쩌우가 해방전선 전사로 활동한 과거 베트남의 전쟁시기 이야기와 교차된다.

90년대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만들기도 한 방현석 작가는 희생자 중 베트남 여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한국을 찾은 그의 가족을 돕고 베트남까지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오롯이 소설이 되었다.

매년 사월에는 ‘세월호’ 책을 읽을 것

소설은 세월호로 가족을 잃은 이들에 대한 애도와 위로만을 품고 있지 않다. 베트남 전쟁에서 해방전선에 가담했던 쩌우의 시선으로 자본주의 아래 사람 목숨까지도 돈으로 환산하는 한국과, 사회주의로 통일을 하고도 제 몫만을 챙기며 이기적인 세월을 살고 있는 베트남의 모습에 한탄을 보낸다.

돈에 눈이 멀어 배를 불법으로 개축하고 과적을 한 선사와 관리에서 손을 놔버린 정부, 승객들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 선장과 승무원에 이르기까지 사람보다 물질이 우선 가치가 되어 버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월'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 사위와 손주를 기다리며 쩌우가 받아야 했던 소외감과 멸시까지, 작가가 울리는 경종이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슬픔을 모욕하는 자들에게 굴하지 않고 3년의 세월을 견디며 싸운 가족들에게 경의를 바친다.’ 누군가는 ‘언제까지 세월호’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37년이 흘렀어도 아직 끝나지 않은 오월 광주처럼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할지 모를 일이다. 그사이 상처는 계속 덧나고 고통은 끝없이 찾아와 괴롭힐 것이다.

이십대 이후 오월이 되면 김남주 시인의 시를 읽고 황석영과 윤정모, 임철우가 그려낸 오월 광주를 읽는 것이 당연한 듯한 시간을 보내왔다. 망월동 묘역을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참배를 하고, 옛 전남도청 안에 켜놓은 촛불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80년 광주에 대한 기억이 없는데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의무라 생각했다.

이제는 해마다 돌아오는 사월에 같은 마음으로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책을 읽게 되리라. 지난 세월 수많은 시와 소설이 광주의 상처를 보듬고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었듯이 세월호의 상처를 쓰다듬어 줄 문학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의 아빠와 오빠를 비롯한 미수습자 아홉 명이 가족을 만났다는 소식이 들려올 날을 간절하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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