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 수필집 『해자네 앞마당』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심억수 충북시인협회장

해자네 앞마당 박영자 지음 선우미디어

박영자 수필집 <해자네 앞마당>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이팝꽃 필 무렵’, 2부 ‘해자네 앞마당’, 3부 ‘무심천을 거닐며’, 4부 ‘숲의 향기’, 5부 ‘직선과 곡선’ 등으로 50편의 수필을 담았다.

박영자 수필가는 서문에 수필이라는 도반을 만나 동행한 지 20년이 넘었다고 하였다. 도반은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으로서, 도(道)로서 사귄 친구란 뜻이다. 자신의 삶이 나무처럼 진실해지고 싶어 수필과 연을 맺어 짝사랑했단다. 수필은 자기 생각을 여과 없이 거짓 없이 고백하는 문학이다.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사랑과 질화로의 따뜻한 정(情)을 그리고 싶었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필을 쓰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오직 좋은 글을 쓰겠다는 염원으로 스스로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그는 가슴속에 수필이라는 나무 한 그루 심어놓고 물을 주고, 북을 주며, 가지를 치고, 벌레도 잡아주며 내 분신으로 열심히 가꾸었다. 돌아보면 튼실한 열매를 거두지는 못했을지라도 수필나무를 가꾸는 동안 숱한 갈등을 겪고 통증을 경험하면서도 그 속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하였다.

수필은 단순한 자신의 평범한 경험을 사실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다. 내용이 철학적이고 정서적 감동이 담긴 문장이어야 한다. 박영자 수필은 그만의 독특한 정신세계가 담겨있다. 오랜 세월 갈고 닦은 표현의 유려함과 세련미에 작가의 주관과 사상이 투영되어 있다.

권대근 문학평론가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강조하는 박영자 수필가는 바이오필리아적 성숙한 의식으로 한 가지 사물을 사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이 보여주는 정취 속에서 자연의 외경을 느끼며, 자연이 신의 섭리를 따르고 있다”고 하였다.

정목일 수필가는 “박영자 수필은 묵은지처럼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낸다. 그냥 그대로 내놓은 설익은 맛이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도리, 덕목, 격식, 운치를 아우러서 내는 맛이요, 멋이라 할 수 있다. 한 여성으로서 삶의 의미와 가치 창출의 꽃을 수필로써 피워놓고 흔들리지 않는 중정의 미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하였다.

‘봄비의 약속’은 계절의 순환을 통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봄비에 젖는 대지처럼 삭막한 도시의 삶에 지쳐있던 작가의 마음이 풀리듯 독자의 마음도 따뜻해진다. 생명의 손짓을 그리며 손바닥만 한 텃밭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작가는 체험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소망을 봄비의 위대한 약속으로 승화시킨다.

생명의 소리 사람의 향기가 있다

“남풍에 실려 새색시 걸음으로 살금살금 오는 봄비는 잠자는 생명을 흔들어 깨운다.”, “봄비는 북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언 강을 풀어주고, 실개천의 물을 부풀려 물소리를 스스로 키우며 흘러갈 것이다.” 개인적 삶의 철학과 사색을 소박하면서도 진솔하게 담았다. 문장의 표현은 주관적이지만, 나의 마음에 문학적 예술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이팝꽃 필 무렵’의 작품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애달픈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온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조명하였다. 은근과 끈기의 한국인의 생명력을 이팝나무에 담았다,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위해 당산목으로 심은 이팝나무에 꽃이 필 무렵 그 깨끗하고 순박해 보이는 꽃을 보면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는 작가의 고백에 마음이 짠해진다.

‘무심천을 거닐며’에서 작가는 “청주에 무심천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아니 애초에 무심천이 있었기에 청주가 생겨난 건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어머니 품속에 안긴 듯 푸근함과 위로를 받는다”라고 하였다. 청주는 생명의 도시다. 무심천의 맑은 물은 청주 기적이며 생명의 근원이다. 무심천의 무심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삶에 지친 일상의 마음을 무심천을 바라보며 비우는 시간을 가져보자.

또 작품 ‘숲의 향기’에서 대관령 자연휴양림 솔향에 취한 작가는 생명의 소리에 마음이 경건해진다. 갖가지 나무들이 금방 세수한 얼굴로 이슬방울을 단 채 반기는 새벽 대관령의 모습에 반한 작가는 재잘대는 새소리에 귀를 씻는다.

‘해자네 앞마당’은 병풍처럼 둘러친 산 밑에 안채가 아득하고 행랑채를 나서면 앞마당이 있다. 그 마당은 동네 길이기도 했다. 울도 담도 없이 장에 갔다 오는 사람, 고개 넘어 향림으로 가는 사람들이 이 마당을 지나다녔다. 지나가다 물 한 그릇 얻어먹고 가기도 하고, 행랑채 쪽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쉬며 우리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해자네 앞마당’은 유년시절 박영자 수필가의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다. 생명의 소리 사람의 향기를 가슴에 담은 박 작가는 글감을 찾기 위해 세상 바다에 늘 낚시를 드리우고 살았다. 진실이라는 푯대 하나만은 곧게 세우고 살았기에 여한은 없다고 작가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박영자 수필가는 충주 출생으로 <한국수필>로 등단하였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및 감사,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충북문협·청주문협·충북여성문협 회원.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강사이다. 저서로는 <은단말의 봄>, <햇살 고운 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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