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형 「몽롱시편 -시계」

나는 이제 그대에게 맞춰졌습니다. 늙는 일이 수월합니다. 저절로 갑니다. 마흔 넘어 가는 시간은 영롱하여 꿈속에서도 눈을 뜹니다. 소리도 무르익어 적막합니다. 사랑도 굳이 용기가 필요 없습니다. 먼저 가서 기다리거나 뒤에 남아 애태우거나 보채며 걱정하지 않으니 이 영원한 현재를 두고 어찌 시간이 없다는 말 하겠습니까.

─ 김민형 「몽롱시편 -시계」(<충북작가> 30호에서)
 

그림=박경수

「희랍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묘비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깁니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인간의 삶에서 이렇게 욕망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의 영역을, 불도의 세계에서 생각하면 그야말로 초월적 경지라 말할 수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사람이 내 안의 세속적 욕구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생애를 대지 위에 흐르는 천상의 시간 속에 맡겨버릴 수만 있다면, 그것은 진실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참된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것입니다.

김민형 시인은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한동안 예술단체 일을 맡아보기도 하고 결혼도 하고 열심히 술도 마시면서 우리 주위를 넘나드는가 했더니, 언젠가부터 소식이 묘연했지요. 알고 보니 그동안 인생세간을 떠나 법문에 귀의한 것을 까맣게 몰랐어요.

이 시는 그가 승려시인으로 처음 발표한 세 편의 시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만우’ 스님은 어느새 우리가 범접하기 힘든 탈속의 세계에 안주한 듯합니다. 만상의 흐름 속에 보금자리 친 그의 육신은 이제 저절로갑니다. 애태우거나 보채고 걱정하지 않으니 시간은 영롱한 꿈속에서 눈을 뜨고, 소리도 무르익어 그대로 우주가 적멸보궁입니다.

카잔차키스는 또 말합니다.‘ 삶이니 인간이니 하는 것들은 대지의 격렬한 소용돌이에서 생겨난 덧없는 불꽃일 뿐’이라고. 그렇습니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 존재란 참으로 보잘것없는 보푸라기에 불과하지요. 뒤뜰에 영산홍이 몇 번이고 피었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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