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황금연휴다. 5월 3일 석가탄신일, 5월 5일 어린이날 그리고 뒤를 잇는 공휴일, 여기에 공식 쉬는 날은 아니지만 5월 8일 어버이날에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일 등, 머리좋은(?) 직장인들이라면 무려 11일을 챙길 수 있다고 한다.

모든 사회현상이 그렇듯 여기에도 획일적인 잣대는 금물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혹은 개인의 사정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누구는 천재일우(千載一遇)라고 하지만 어쨌든 대한민국 장삼이사들이 힐링을 위한 모처럼의 기회를 맞은 건 분명해 보인다.

예상은 했지만 황금연휴라는 단어가 언론에 등장하자마자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다. 국내 및 외국행 비행기표가 품귀현상을 빚는다는 보도에서부터 감히 꿈도 못꾼다는 중소기업체의 소식도 전해졌다. 분명한 것은 어차피 휴가와 휴식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도 인간의 삶은 쉬어가면서 살아야 의미가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휴식문화는 여전히 후진적이다. 삶의 재충전을 위한 쉼이기 전에 그 자체를 명분, 계량화하려는 국민적 내성이 여전히 횡행하기 때문이다. 정작 놀면서도 놀 지를 모른다고도 말들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휴가나 휴식문화가 서민의 삶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이른바 산업화시대를 지난 80년대 부터다. 그 이전엔 무슨 레저나 휴가라는 단어 자체가 아주 생소했다. 이를 상징하는 한가지 현상이 지난 6, 70년대에 언론의 가십으로 종 종 등장했던 서울 이태원 등의 풍경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인들은 국가 주도의 생산활동과 먹고사는 문제로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오로지 일에만 매몰됐다. 이 때 미군부대가 위치한 이태원을 중심으로 평일 오후나 특히 휴일 등에 목격되는 외국인들의 조깅 모습은 우리에겐 너무나 큰 괴리감으로 다가온 것이다. 도로를 뛰어다니는 그들을 향한 시민들의 반응은 “참 할 일 더럽게도 없다”였다. 그 때 그들의 모습, 예를 들어 짧은 반바지 차림의 남자와 가슴과 어깨를 거의 드러낸채 조깅하는 여성들의 광경은 우리 언론에 ‘풍기문란’이라는 단어를 동반해 소개될 정도였다.

지금은 어떤가. 한국의 레저, 휴가문화도 이젠 세계인들이 부러워할 경지에 올랐다. 굳이 돈으로 따지는 것이 버거울 정도로 휴가와 레저문화의 차원과 수준이 높아졌고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즐긴다”는 마인드기 지나칠 정도로 팽배해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제대로 놀 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이젠 3천만의 레저가 되었다는 주말 산행을 예로 들어보자. 다는 아니지만 주말 산행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얼마나 빠르게 정상에 오르고 또 얼마나 긴 코스를 단 시간 내에 주파하느냐는 것이다. 등산을 하면서도 자연을 숨쉰다는 생각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전국의 명산을 몇 개나 등정했느냐가 궁극적 목적인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를 두고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은 노는 것도 경쟁과 속도전”이라고 비아냥댄다.

‘도(道)는 곧 자연이다.’ 다름아닌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이다. 노자는 모든 덕은 자연을 따르는 것이라며 어떤 꾸밈도 없는 존재 자체의 순수함을 삶의 최고 가치로 평가했다. 여기에서 탄생한 것이 노자의 무위정치론으로 그는 “통치자의 인위적인 조작이 없으면 백성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고 설파했다.

왠 생뚱맞은 얘기냐고 반문하겠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이 놀아도 제대로 놀 줄을 모르고, 또 자연을 접해도 자연으로 만나지 못하는 국민들의 각진 사고방식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국민과 자연에 어울리며 놀기보다는 오로지 구중궁궐에 묻혀 혼자 올림머리와 보톡스에만 정신이 빠져있다가 끝내 국정을 거덜냈고, 대통령후보라는 사람들은 도무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인정은 없고 끝간데없이 네거티브다.

이 뿐인가. 송민순이란 자는 케케묵은 고리짝 종북논리로 선거판을 뒤흔들려다가 정쟁의 한 복판에서 어느덧 힘에 부치니까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자신이 그토록 자기신념에 강했다면 현직에 있을 때 차라리 본인의 뜻을 끝까지 곧추세우며 사표를 던졌어야 옳았다. 어떠한 경우의 수를 감안하더라도 10년이나 지난 이제 와서 주군의 뒷통수를 친다는 건 인간적 배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어려서부터 동료, 친구들과 어울리는 놀이에 익숙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세련되고 인간적인 처신을 보였을 것이다. 얼마전 OECD는 한국 학생들의 삶 만족도가 47개 회원국 중 46위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잊을만 하면 터져 나오는 뉴스, 청소년들의 동반자살과 그들에 의한 말도 안 되는 비위사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역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자녀들이 서로 어울려 놀지를 못하는 데 기인한다. 유치원 시절부터 오로지 경쟁과 학업에만 내몰리면서 그들은 혼자만의 고민으로 세상을 두려워하고 혼자만의 선택에도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 황금연휴다. 국정을 파탄시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속죄하는 마음으로 국민들에게 마지막으로 안기는 선물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이번 연휴만큼은 굳이 갈데가 없더라도 동네 뒷산이라도 올라 근자에 최고로 자지러지는 봄을 만끽하기 바란다. 가까운 둘레길을 걸어도 좋다.

휴식은 잠시 모든 걸 내려 놓고 부드럽게 힘을 빼는 것이다. 그래야 세상을 헤쳐나가는 더 강한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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