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단원 5명이 ‘맨 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큰 행사 벌여
수많은 악재속 성공, 약 3000명의 관객들 코너마다 장사진

안남영의 赤道일기(14)
전 HCN충북방송 대표

지난 23일 반자르마신 제일의 공연장인 술탄 수리안샤 체육관. ‘2017 한국문화축제’가 열린 이곳을 찾은 수많은 관객들이 눈길과 발길을 어디로 돌려야 할 줄 모르고 헤맸다. 무대는 무대대로 열기를 내뿜고, 플로어엔 체험 코너마다 줄이 길어서다. 이날 오전 9시부터 문을 개방하자마자 밀어닥친 관객들은 3000명에 가까웠다. 음식이니 한복 체험코너 질서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판매한 쿠폰(우리 돈 500원 상당)이 6000장 가까이 나갔다.

한식과 한복 코너엔 한국의 맛과 멋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100명 이상 장사진을 이뤘다. 떡볶이와 김밥, 김치, 양념치킨은 물론 한복의 인기가 이렇게 높을 줄 몰랐다. 내가 운영하는 붓글씨 체험코너에도 사람이 넘쳤다. 관객 자신 또는 한류 연예인 이름을 한지나 한지부채에 한글로 써주는데 난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붓을 놀렸다.

한국의 4계절을 담은 대형 배경막 앞에도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특히 클래식 공연은 불모에 가까운 도시에서 충북음악인협회의 짧지만 수준 높은 특별공연은 이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또 삼성 휴대폰이 걸린 한국어퀴즈대회는 이들에겐 유례없는 빅이벤트였다.
 

붓글씨 체험 코너 등 행사장은 관람객들로 크게 붐볐다. 멀리 2층 스탠드에도 관객들이 보인다.

프로그램의 두 축 경연과 체험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봉사단원들에게 ‘협력활동’이라는 프로그램이 장려되고 있는데, 한국문화축제 같은 아이템만한 게 없다. 게다가 반자르마신은 한 도시에 단원이 가장 많은 5명이 주재하는 곳이어서, 다들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에선 상통하고 있었다. 행사 취지는 한류 문화를 매개로 코이카 본연의 봉사활동과 연계된 지역 밀착 실현이다.

사실 한국에서 이 정도 행사라면 놀음이면 놀음이었지 일거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역만리에선 아닌 게 아니라 겁 없는 도전, ‘맨땅에 헤딩하기’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현지 물정에 어둡고 말이 서투르기 때문이다. 상황파악이나 대처능력 면에서 어린애 수준을 면치 못했기에 준비 기간 내내 조바심이 났다. 과정 또한 수평적 관계인 동료단원끼리 합심협력하고 갈등을 겪으며 묘수를 찾고 서로 위안을 주는 것이어서 의미 있었다.

준비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다. 처음에 행사 개최 일정을 2월 하순으로 잡고 역순으로 실행계획을 세웠지만 여의치 않아 4월로 늦춰 잡았다. 회의 결과 프로그램은 경연과 체험 두 축으로 정해졌다. 경연은 한국의 최신 음악을 소재로 한 노래자랑과 춤 대회로 잡았다. 체험은 먹어 보고, 입어 보고, 만들어 보고, 배워 보고, 놀아 보고, 써 볼 수 있는 것들로 반자르마신에서 일찍이 구경 못했던 내용.

또 한국의 4계절이 담긴 포토존 설치에도 쉽게 의견이 모아졌다. 여기에 나는 다른 지역 코이카 행사에선 흉내 낼 수 없는 프로그램으로 국내 음악인 초청 공연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를 위해 작년 12월 잠시 귀국한 길에 충북음악인협회 지인들에게 제의를 했지만 바로 답안을 받아들고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올 들어 임지에서 동료단원 4명과 함께 행사추진을 본격 논의했지만 실행계획이 코이카본부로부터 승인되지 않은 상태라서 논의자체가 좀 막연하기도 했다. 그런데 동료 단원이 근무하는 람붕 망꾸랏 국립대의 동아리 ‘한사랑클럽’이 때마침 노래자랑 같은 대회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에 공동주최로 방향을 급히 틀었다. 다행히 경연 부문은 손 안 대고 코 풀게 된 셈이다.

이로써 뭔가 좀 잘 풀릴 것 같던 계획은 그러나 수시로 고비를 겪어야 했다. 코이카 본부의 행사 승인이 3월 중순에야 나고 예산을 4월 중순에야 내려 준 건 그래도 예측 가능해서 참을 만했다. 이보다 우울하고 마음을 졸여야 했던 순간들이 정말 숱하게 많았다.
 

2017 반자르마신 한국문화축제에서 초청공연이 끝난 뒤 충북음악인협회 일행과 현지 교민들이 함께 무대를 등지고 기념촬영을 했다.

한국 교민들 도움으로 치른 행사

첫 번째 고비는 경연 위탁 건. 한사랑클럽 학생들을 설득하는 일이 의외로 까다로웠다. 이들은 당초 이곳의 여러 한류 동호인들끼리 교류하는 일종의 커뮤니티 간 협력 속에서 행사를 꾸릴 생각이었는데, 이 커뮤니티는 참가비 갹출과 입장권 판매를 통해 행사취지를 거스르는 수익 창출을 노리고 있었다.

또 온종일 경연 독무대를 당연시해 우리를 당황시켰다. 시상품 협찬을 코이카에 요청하기도 하더니 여의치 않자 독자적인 스폰서 유치에 나서 상업적 변질 가능성을 우려케 만들었다. 이런저런 의견충돌이 심상치 않았지만 결국 우리 뜻대로 입장권 판매 불가, 경연 프로그램 2시간 이내 원칙 등을 관철해 냈다. 아무튼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장단점이 있음을 실감해야 했다.

공연단 초청에도 고비가 있었다. 미련을 갖고 강희경 충북음악인협회 회장과 죽 연락을 취하던 터에 2월쯤에야 답을 받았다. 좋으면서도 나쁜 소식이었다. 방문 공연단이 자비로 온다는 것이었다. 당초 충북문화재단의 지원 대상 프로그램에 선정될 가능성을 내다보고 추진했던 것인데, 탈락이 되는 바람에 회원 자비 결행을 선택한 거다. 이 결정이 내게 안겨 준 고마움과 부담감은 앞으로 두고두고 방문해 준 협회 지인들에게 갚아야 할 빚으로 남았다.

현지 기관은 원망스러웠다. 경찰의 까다로운 공문 요구, 이민국의 공연한 트집 등이 좀 지나쳐서 우리를 대신해 관련 서류를 준비해야 했던 한사랑클럽 회장이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특히 외국인의 ‘무단 공연’은 문제될 수 있단 이야기를 듣고 내내 불안했다. 실제 이민국 직원이 현장에서 사진 찍고 문제 삼을 태세를 보였는데, 교민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해결됐다.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어렵게 얻은 초고화질 사진으로 만든 포토존 앞에선 필자.

또 내가 일하는 학교는 엄연히 내 계획을 알고도 그 날짜에 교내 행사를 잡아버려 애를 먹이기도 했다. 게다가 동료단원이 있는 국립대 총장은 코이카 단원들의 격을 따져 행사참석 요청을 묵살했다. 정말 황당했던 건 그 대학 유력인사가 우리 행사를 알고도 밀고 들어와 행사장을 전날 밤12시까지 예약해 놨다는 것이다. 전날 설치 작업을 전혀 못하게 말이다. 해결은 됐지만 얼마간 멘붕을 겪어야 했다. 거기에 자카르타 한국문화원은 몇 차례의 한복이나 홍보물 협조요청에 이상하게 ‘나몰라라’로 일관했다.

예산문제도 고민거리였다. 예비비가 3%인데 4월에 소요물품을 사려고 보니 1월 계획서 제출 시 견적가보다 크게 오른 것이었다. 홍보 팸플릿은 만들 생각도 못했다. 다행히 교민(김유진·47·물류업)으로부터 음식재료 조달과 배차 문제, 팸플릿 제작 등에 도움을 받고 자카르타의 내 고교 동창, 청주의 향토기업인 젠한국 인도네시아 법인이 시상품을 협찬해 줘 행사가 푸짐해졌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아무튼 노심초사했던 지난 6개월은 색다른 보람과 추억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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