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 「헛간」 전문

헛간에는 헛것들이 모여 산다
나의 생애 넘보듯 햇빛들
터진 지붕 새로 비쳐든다
때론 봄이 되어 썩은 감자
소리 내지르며 새싹을 틔우다가도
이내 허리를 꺾고 쓰러진다
겨우내 먹은 것 없는데, 감자 한 톨
그늘에 앉아 제 살 깎아먹는다
헛것이 되기 위해 지상에 쏟아져 내리는 저것,
손바닥에 햇빛을 이리저리 받아보지만
쥐어지는 것 없는데, 저것
따뜻한 하늘 한 쪽 품고 뛰어내리면서 말한다
봄 하늘 아래 감자 싹 제 살 찢고 나오는
소리 들어 보라고

─ 노창선 「헛간」 전문(시집 『산수시첩』에서)

 

그림 박경수

새 봄과 함께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참 좋은 시입니다. 헛간에서 제살을 깎아 먹고 새싹을 키워내는 감자를 엿보게 된 시인의 통찰이 눈부십니다. 땅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감자 싹은 이내 허리를 꺾고 쓰러지겠지요.

이 시는‘ 헛된 날들에게 바쳐진’ 헌사입니다.‘ 헛것’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내면적 성찰을 통해, 헛것이 결코 헛것만은 아닌, 절망도 때로는 순간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삶의 겸허한 이치 속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렇게 삶이 발견한 풍경에서 문학이 태어나고 문학은 또다시 새로운 삶을 낳습니다. 사람들은 문학이라는 창문을 통해 삶을 엿보고, 문학이라 는 길 위에서 삶을 가로질러 갑니다.

생명성이 지닌 숙명, 그 찰나의 가지 끝에서 반짝이는‘ 따뜻한 하늘 한 쪽’, 그것은 모름지기 헛되고 무상한 삶의 길 위에 숨겨진, 하늘의 섭리를 섬기는 시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소위 카프카가 말하는‘ 문학이 주는 불가사의한 위안’은 이렇게 태어납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