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7, 80년대를 관통하는 이른바 민주화시대를 경험한 사람들, 특히 당시 젊은이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공유한 생각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 대한민국 사회의 주축이 되었을 때는 나라의 모든 문화가 크게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 다른 건 몰라도 정치나 국가통치에 있어선 훨씬 더 정상화될 것이라는 공감이었다.

이는 다름아닌 군사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까지도 희생하며 벌이는 치열한 투쟁의 현장을 몸으로 체험했기에 막상 자신들이 사회와 국가운영의 주류가 될 경우 그 학습효과는 반드시 순기능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추론에 근거했다.

그런데 당시를 똑똑히 기억하는 사람들은 요즘, 오히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싸여 있다.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懷疑)마저 갖는 것이다. 근자의 국정농단으로 상징되는 정치와 역사후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세대들의 행태. 즉 그들에 의해 유발되어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반 이성과 몰 상식의 현상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때에 가장 격동적인 삶을 살았던 대학생을 기준한다면 그들은 지금 50, 60대가 되어 우리사회의 장년층을 대표하고 있다. 고등학문을 접하면서 숱한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처지이기에 사회와 국가 현안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그래도 합리적이며 이성의 언저리를 무원칙하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에선 괴리가 크다. 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한가지 좋은 예가 오는 5월 대선과 관련된 것이다. 사석에서 이 주제만 나왔다 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들 장년층은 금세 두패로 나뉜다. 보수와 진보, 아니 수구와 좌빨이다. 대통령 후보에 대해선 누구는 빨갱이어서 안 되고 누구는 꼴통이어서 안 된다는 말이 쇳소리로 뒤엉켜 분위기를 압도한다. 여기엔 이유가 없다. 그저 무조건적이다. 그들에게서 3, 40년전 최루가스를 마다않고 거리로 돌진하던 그 냉엄함과 열정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오기와 극도의 아집만 넘쳐난다.

이럴 때마다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서로 맞대고 부딪치며 살아가야 하는 게 세상이라는, 일종의 삶의 피곤함(?)이고 또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도 나의 권리와 주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잘못하다간 내 의지와는 전혀 상반되는 세상이 되어 나까지도 지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더욱 곧추세우는 게 오는 5월 대선에서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다. 또 다시 짝퉁 대통령을 뽑아놓고 신음하지 않으려면 이번 만큼은 모든 국민들이 추상같은 투표권을 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다지는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체념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지난 일들을 기억해내면서 다시 한번 3, 40년 전의 민주화시대를 재현해 보자는 욕심에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는 이번 대선의 투표율을 예년보다도 높게 예측하고 있다. 특히 헬 조선으로 인해 아사 직전에 있는 젊은이들이 국가개혁의 의지로써 적극적인 투표참여를 벼르고 있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난 4.12 재보궐선거의 전국 투표율은 고작 28.6%에 머물렀다. 148만 8367명의 유권자중 겨우 42만 5426명만 투표한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투표를 안한 106만여명은 어떠한 선택에 있어 자기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종을 자처한 것이다.

선거의 맹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말이야 다수 의사에 따른 최적의 결정을 존중한다지만 현실에선 안 그렇다. 선진국의 특징적인 현상쯤으로 포장되며 갈수록 저조해지는 투표율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투표권을 사장시킬 수록 이를 악용하려는 가짜들은 더 홰를 친다. 탄핵당한 박근혜의 교훈이다. 선거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우매한 대중들을 양산시키고 이는 곧 정치 사기꾼들을 움트게 하는 온상이 된다. 누구보다도 젊은층들이 반드시 투표장에 가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본격 선거전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상대에 대한 마타도어와 폭로, 막말, 선동 등이다. 종북과 빨갱이 타령도 여지없이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과거에는 부정선거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여론조작이 대선의 더 큰 악재가 되고 있다. 나라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정치인들이 툭 툭 내던지며 선동하는 말에 유권자 뿐만 아니라 언론까지도 놀아난다.

결국 관건은 국민들의 의식수준이다. 모든 민주국가에서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말은 백번이고도 맞는다. 지난 번 실패한 대통령도 당시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에 맞춰서 탄생했고 다음 번 대통령 또한 국민들의 수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또 다시 실패한 대통령이 만들어진다면 그건 국민들의 수준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마치 3, 40년 전의 민주화 세력들이 의식의 진화는커녕 오히려 퇴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는 국민들이 집단으로 벌이는 직무유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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