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할 빈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안에 앉아
빈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 류시화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전문(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서)

 

그림 박경수

끊임없이 새로운 진실을 찾아 떠나는 몸과 마음의 신산한 여행을 통해서, 상승과 하강, 비움과 채움의 상반된 개념이 결국 하나의 도리임을 깨달은 자가 바라보는 담대한 세상. 그 곡진한 정신의 등가물로 ‘빈자리에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경지를 발견한 시인은, 드디어 우리를 자기의 말씀으로 부릅니다. 비운 자만이 마땅히 세상을 채울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시의 처처에 숨은 사유의 보석들 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훤칠한 키에 장발의 이‘ 신비주의적 명상시인’이 우리 고장 출신임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시인은 거의 속연을 끊고, 일 년의 반은 인도, 네팔, 티베트 등의 오지에서 여행과 명상으로, 나머지 반은 명륜동 자택에서 시작과 번역을 하면서 보낸다지요. 딱 두 번 낸 시집이 모두 백만 부 이상 팔리는가 하면, 시는 외우고 외워서 암송으로 오래오래 한 편씩 써나간다고 합니다. 지극히 높고 맑은 정신을 찾아 오늘도 시업과 수행을 놓지 않는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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