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5월 대선과 관련해 신조어를 하나 만들어야겠다. ‘떠돌이 표심’이다. 떠돌이의 사전적 의미는 ‘정해진 곳이 없이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다. 지금 국민들의 표심이 이와 똑같다는 생각이다. 그 근거는 이렇다.

박근혜 탄핵정국의 와중에서 우리는 그동안 전혀 경험하지 못한 한가지 특이한 현상을 연이어 접하고 있다. 국민들의 마음, 즉 민심의 일시적이고도 거국적인 쏠림현상이다. 대선 후보들에 대한 여론조사 때마다 이른바 대세를 형성하는 후보가 요즘처럼 단 시일 내에 교체되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나라를 견인한다는 민심이 오늘은 여기 붙었다가 내일은 저기에 붙는 형국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무능한 대통령과 최순실이라는 일개 사인(私人)에 의한 국정농단이 불거지면서 가장 먼저 대세론을 탄 사람은 문재인이다. 오래전부터 박근혜 정권의 대항마로 지목되며 30% 대의 흔들리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어쨌든 그가 한때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누린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후 여론은 반기문~황교안~안희정~안철수 순으로 요동을 쳤다. 여야를 넘나들며 특정 인물들이 이처럼 돌아가면서 여론의 큰 흐름을 이끌게 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박근혜에 대한 극도의 상실감이 역으로 새로운 인물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을 대책없이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통상 선거에서 가장 변수로 꼽히는 게 부동표다. 부동표(浮動票·floating vote)는 말 그대로 공중에 떠서 움직이기 때문에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한 지지여부가 불확실함으로써 선거 막판까지 그 향방을 점치기가 곤란한 경우를 일컫는다. 뚜껑을 열 때까지 알 수 없는 게 부동표다.

그런데 지금은 이 부동표들이 실패한 대통령에 대한 학습효과 탓인지 이미 오래전부터 특정 인물이 부각될 때마다 그를 향한 간절한 의사표시(?)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부동표이면서도 오히려 더 확실한 방향성을 보이고 있고 이를 등에 업은 후보들이 단기간 내에 서로 부침을 주고 받고 있다. 반기문과 안희정, 안철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반기문은 비록 3주 천하에 그쳤지만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전력으로 포장돼 민심의 거침없는 지지를 받아 대권의 목전까지 갔다가 좌절했고, 안희정 또한 대권도전 선언과 동시에 폭발적인 지지세로 새정치의 아이콘으로 반짝 떠오르는가 싶더니 경선패배로 무대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지금은 단연 안철수의 대세다. 오랫동안 10%대로 고착되어 있던 지지도가 불과 10여일 사이에 세배로 급상승해 문재인과 양강구도를 이루고 있다. 이를 꼭 중도나 보수층의 이동 효과라고 단정짓지 않더라도 어쨌든 부동층의 민심이 대거 안철수로 쏠리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민주국가의 정상적인 선거, 그것도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단 며칠 만에 지지도가 무려 세배나 뛰어오른다는 것은 분명 상식을 벗어난다. 이 때문에 이번 대선의 부동표는 결코 부동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이곳 저곳 배회하며 돌아다니는, 그러다가 이 사람이다 싶으면 대책없이 안기려고 안달하는 떠돌이표, 떠돌이 표심이라고 해야 더 설득력을 얻는다.

박근혜정권의 파산으로 보수와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이 대거 주인을 잃은 부동층으로 분류되는 게 현실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금의 부동층은 정치적 성향에서라기 보다는 또 다시 실패하지 않을 대통령, 즉 ‘인물’을 갈구하는 데 따른 민심의 쏠림으로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봐야 맞다. 이로써 특정 후보가 부각될 때마다 유권자 스스로 그에 대한 기대심리를 지나치게 높이는 바람에 문재인 반기문 안희정 안철수 등이 서로 바통 터치하며 본인들의 통치적 자질 및 능력과는 상관없이 하루 아침에 대권의 반열에까지 올려지는 기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떠돌이 표심은 부동표와는 달리 다분히 감성적으로 표출된다는 데에 그 위험성이 크다. 부동표는 마지막까지 후보를 요리조리 재고 평가하려는 유권자의 냉정함이 전제되지만 떠돌이 표의 경우 유권자가 특정 인물을 스스로 가공하려는 의지가 강함으로써 잘못하면 후보의 실체가 아닌 우상(偶像)에 꽂힐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실패사례에 비춰보면 쉽게 이해된다.

성공한 기업인이었기에 성공하는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이명박을 뽑아줬지만 그 결과는 4대강사업과 자원외교로 상징되는 ‘사기(詐欺) 정권’으로 종를 쳤고, 원칙과 신뢰를 내세우기에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박근혜를 선택했지만 역시 그 끝은 헌정을 파탄시킨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으로 귀결됐다.

이들을 가공의 우상으로 만들어 대통령에 앉힌 것도 국민이고, 그 폐해를 고스란히 감수하는 것도 국민들이다. 지금의 떠돌이 표심, 다시 말해 어느 특정 후보가 좀 부상한다 싶으면 블랙홀에 빠져들 듯 대책없이 쏠리는 민심은 이처럼 또 다른 우상을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 후보에 대한 검증이 아닌 후보를 향한 기대감만을 앞세운다면 다음번 대통령 또한 필히 부적격한 사람이 선택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은 한국정치의 불치병인 영호남 세대결에 따른 영호남 몰표가 없다는 것도 한가지 큰 특징이다. 그러기에 더 우려되는 것은 떠돌이 표심에 의한 개념없는 몰표현상이다. 작금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자칫하다간 떠돌이 표심이 떠돌이같은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선거는 절대로 최고, 최선의 지도자를 만들지 못한다. ‘선거는 최선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최악을 피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밖에 없다.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노출되고 오랫동안 검증된 사람, 그리하여 진실뿐만 아니라 위선과 가식까지도 금방 드러나는, 그런 후보가 그나마 최악이 아닌 차악(!)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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