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구신화스믈일곱번째이야기

이때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있던 어느 누가 촌장 아들을 향해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아, 여기서 뭘 해먹은 흔적이 있습니다."

모두 그곳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벌구가 여우리와 함께 산돼지X과 뱀을 불에 구워가지고 맛있게 먹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촌장 아들과 그 무리들이 그곳에 다가갔다.

"으음, 대충 보아하니 이곳에서 떠난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구만..."

촌장아들이 불에 타고남은 나무가지와 재를 쥐고있던 칼 끝으로 휘휘 저어보며 말했다.

"그런데... 도대체 뭘 잡아서 구워먹었나? 먹다 남은 뼈조각 하나조차도 보이지 않으니..."

"그러게..."

"혹시, 놈이 무엄하게 날아다니는 새 같은 걸 잡아먹은건 아닐까?"

어느 누가 갑자기 겁먹은 표정으로 이런 말을 꺼냈다.

"설마 그런 건 아닐거야."

"그럼, 왜 뼈조각이 없는거지?"

"그러게... 놈의 이빨이 아무리 튼튼하더라도 딱딱한 뼈까지 꼭꼭 씹어서 삼켰을리는 없을테고.... 조그만 새라면 하다못해 깃털이라도 남아있어야할 게 아니야?"


"그거참! 북쪽에서 온 것들은 그렇게 이빨 힘이 대단한가? 구운 것을 요렇게 깨끗이 말끔하게 먹어치우다니..."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더 주위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말랑말랑한 산돼지X과 뱀을 구워 먹었으니 뼈 조각 같은 것들이 남겨있을리 만무였다.

"으음, 됐다! 이걸로서 대충 감잡았어!"

잠시 침묵을 지키고있던 촌장 아들이 갑자기 고개를 끄덕거리며 크게 말했다.

"...."

모두들 촌장 아들을 쳐다보았다.

"내가 추측컨대 그 벌구라는 놈은 아직 이곳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어. 즉, 달아날 생각이 아직까지 없는 거야. 만약 도망갈 생각이었다면 우리가 여기 오기도 전에 도망쳤을 것이지 왜 이렇게 한가로이 뭘 잡아서 느긋하게 구워먹었겠는가! 아무리 봐도 이건 허겁지겁 먹어치운 자리는 아니지 않는가?"

촌장 아들의 말에 이들은 바로 이 기회다 싶었는지 고개를 서로 끄덕거리며 아부 한마디씩 해댔다.

"아, 그거 참 대단한 추리입니다!"

"정말 그렇네요."

"이치를 따져봐도 분명히 그럴 겁니다."

"역시 공부를 많이하시고 또 지혜가 워낙 깊은 분이니 저희들 보다 언제나 한수 위이십니다!"

"예전에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저희들이 꾸준히 따라배워야겠습니다."

"존경합니다!"

"이러시니 하늘말촌 천재라는 말이 다 나왔지요."

이들이 해대는 아부에 촌장 아들은 매우 흡족한 미소를 안면 가득히 띠우고있다가 천천히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자, 그러니까 우리 이런 계략을 한번 써보자구..."

"어, 어떻게요?"

"어떤?"

"...."

모두들 두 눈을 반짝거려가며 하늘말촌 촌장 아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으음... 그런데... 이건 워낙 중요한 말이니 우리 어디 적당한 곳으로 가서 은밀히 말하도록하자구."

촌장 아들은 주위를 잠시 또 둘러보다가 검은바위성 한쪽을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보아하니 저 곳이 좋겠구만! 우리 저곳으로 가자구.... 원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어. 항상 매사에 조심조심해야지."

성벽 안쪽에서 이들의 행동을 몰래 엿보고있던 벌구는 촌장 아들의 손가락 끝이 바로 자기가 있는 곳을 향하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크! 이게 어떻게 된거야? 놈에게 무슨 투시력이라도 있는건가?'

벌구의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고 있을때, 촌장 아들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들은 또다시 아부하는 말로 입을 맞추었다.

"아, 좋습니다."

"역시, 바로 저곳입니다."

"제가 척 보기에도 저 자리가 비밀스러운 얘기를 나누는 곳으로서 썩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갑시다, 당장!"

그러나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단 한사람, 범삭이는 상당히 난처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저어, 그런데...아까 보니 그 벌구라는 놈은 어찌나 몸이 잽싸고 빠른지 저 높은 성벽을..."

이때 어느 누가 재빨리 그의 말을 가로채며 화를 냈다.

"어허!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게야?"

"놈의 몸이 잽싸고 빠르다면 설마하니 저 높은 성벽 위에라도 뛰어올라갔다는 말인가?"

"에끼, 이 사람아! 도대체 무슨 재주로 저 성벽 위로 뛰어올라가?"

"도대체 말도 안되는 소리지."

"아, 아니 하지만 아까 내가...."

범삭은 쩔쩔매며 아까 자신이 직접 보았던 벌구의 놀라운 솜씨를 자세히 얘기하려 했지만 촌장 아들이 다시 다서며 그의 말을 또 막았다.

"자, 자... 그만... 보아하니 범삭이 자네는 그 자가 저 성벽 위로 튀어올라가기라도 했다는 말을 하려는가 본데, 사람이 긴장을 하게 되면 가끔씩 헛것이 보이기도 하는 법이야. 자, 더이상 떠들지 말고 우리 저곳으로 가세나. 저곳에서 내 대략적인 작전 계획을 말해주겠네."

범삭은 촌장의 이런 말에 더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촌장 아들은 아직도 머뭇대는 등 썩 내키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범삭을 똑바로 쳐다보며 약간 신경질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범삭이! 자네는 내가 말한 저 성벽 아래쪽이 맘에 들지 않다는 건가? 우리들이 비밀스러운 얘기를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만한 장소로서 적당치 않다는 말이냐구?"

"아, 아닙니다. 저, 저는 단지..."

범삭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슬며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지금 분위기로 보아하니, 이들에게 제아무리 벌구가 아까 저 성벽을 타고 저 높은 꼭대기에 까지 뛰어올라갔었다는 애기를 해보았자 아무도 이를 믿어주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런 말을 꺼낸 자기자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 가자! 저 성벽 아래로 가서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아주 비밀스러운 계략을 말해볼 터이니..."

촌장 아들은 이렇게 말하고는 벌구가 있는 바로 그 성벽 쪽을 향하여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갔고 그 무리들은 즉시 뒤를 따랐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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