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영세자영업자로 살다」

아들놈 유치원 원비 좀 어떻게 해보려고 면사무소에 갔더니 담당이 월수입을 묻겠지요 그래,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원고료에 지방 라디오 방송 출연료를 얹으니 어림잡아 월 십오만 원, 연봉 한 백오십만 원 정도 되겠다니까 그이는 나만큼이나 난감한 눈빛을 위아래로 비추더니 직업 분류 칸에 이렇게 써넣는 것이었습니다

영세자영업

내 직업의 정체를 사회적으로 번역하면 아마 영세자영업, 이 비슷한 것이 되겠구나 싶었는데요, 감면대상 저소득 확인서 받아 가슴에 품고 면사무소를 나서자니 영세한 내 노동의 밤들이 축축한 땀내를 풍기며 뒤따르는 것이었고요, 어쩌면 꽃씨가 담긴 봉투처럼 달강달강 앞장서는 것도 같았습니다

─ 이안 「영세자영업자로 살다」 전문(시집 『치워라, 꽃!』에서)

 

그림 박경수

시인보다 다섯 살 위인 동향선배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으로 이 시의 해설을 대신하면 어떨까요.‘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참으로 알량한 고료며 책값. 지금은 코딱지만치 올랐지만 쌀값도 국밥값도 따라 오르니, 도리 없지.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여, 가난해서 영혼이 더 맑은 시인이여, 미상불 시 쓸 만하겠네! 불혹이 넘은 시인들의 자해가 깊은 우수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꿈이 있는 한 시는 써야지요.

‘마음이 바른 이, 마음이 높은 이, 마음이 아름다운 이’들을 위하여 땀내 나는 노동의 밤샘은 결코 곤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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