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수 시인의 산문집 <껌 먹는 두더지>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류정환 시인, 충북작가회의

껌 먹는 두더지 신준수 지음 도서출판 직지 펴냄

수필은 작가의 내면세계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문학이다.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 누구나 쓸 수 있는 장르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하여 자기 멋대로 쓴 글을 문학작품이라 할 수 없다. 작가의 깊은 생각과 의미를 담아야 한다. 꾸밈없는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여러 가지 문체로 사색적 감정을 표현할 때 독자에게 큰 울림을 준다.

<껌 먹는 두더지> 산문집에 수록된 신준수의 수필은 어린 시절 동구 밖을 뛰어놀던 추억과 곰방대 할머니의 끈끈한 옛 이야기다. 어른들에게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추억을 들춰 내주고 어린이들에게는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상상력을 불어넣어 준다. 자연과 하나 되어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의 시간이 동화처럼 펼쳐져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각각의 작품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과 그냥 지나친 것을 찾아내어 그것이 가진 소중한 가치와 진실한 의미를 전달한다.

신준수 작가는 시인이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한 수필은 한 편의 동화다.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자신의 경험을 신선한 상상으로 그 만의 독특한 문장표현을 하였다. 순수한 감성과 질박한 화법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작가는 서문에서 자연은 마음의 고향이라 했다. 사는 일이 팍팍할 때 우리는 고향을 생각하곤 한다. 고라데이는 강원도 사투리로 산골짜기를 말한다. 책에는 고라데이 먹을거리와 놀이로부터 시작해 다양한 자연을 담았다. 놀이나 식음 과정이 잔혹하게 표현된 작품도 있다.

하지만 그 때 그 시절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또 글을 쓰는 내내 냉이, 씀바귀, 쐐기벌레를 모르고 사마귀와 거미를 보고 질겁하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들에게 자연에 깃들어 산다는 것이 어떤 즐거움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옛 문화를 이해하고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식이 아닌 따뜻한 가슴이라고 적었다.

유년의 그리움 문학으로 승화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감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식과 서로 의논하고 절충하게 된다. 사람과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감정을 갖는다. 또한, 심적 생활의 배경이나 관찰의 대상에 따라 주관적 객관적으로 사물을 관조하게 된다. 작가는 자연을 통해 삶의 진실과 삶의 아름다움을 순수한 아이의 마음으로 추구한다. 엉겅퀴, 지칭개, 메뚜기, 호박, 수수, 목화, 쐐기벌레, 두더지, 고구마, 개구리, 쏙새, 도룡뇽, 쑥, 냉이, 쇠뜨기, 민들레, 자라, 뱀, 매듭풀 등 자연 속 그리움을 삶과 접목하여 문학으로 승화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생동감이다. 수필 또한 주제가 뚜렷해야 생명력이 있다.

작가는 마타리꽃을 보고 고라데이 고향 언덕이 아스라이 망막 가득 담겨 추억에 잠긴다. 그리고 명자, 은옥, 현숙, 숙자, 영숙, 경희, 정순 등 친구들을 막역한 연민과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떠올린다. 작가는 자기 삶의 풍경들을 멀리 보게 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갖게 해 준 노란 마타리꽃을 좋아한다. 마흔 몇 해가 지난 그는 지금도 마타리꽃을 보면 콧날이 오뚝한 그 아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지고지순하다. 비밀스러운 고향의 아름다운 그리움을 한눈에 그려놓았다.

연평해전의 영화를 보며 할머니가 들려준 동족상잔의 증언을 떠올린다. 억척스레 버틴 인고의 세월을 보낸 할머니의 지혜로 미숫가루 폭탄의 위력을 체험한다. 할머니가 들려준 삶의 이야기에 조금씩 인생의 진리를 깨우친다. 할머니와 함께하면서 체득한 삶의 지혜와 할머니의 심정을 헤아린 작가는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라며 함께 할 수 없는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작가의 어머니는 강아지풀 줄기에 줄줄이 꿰인 메뚜기를 보면 징용에 끌려간 오라버니가 생각나고 살구꽃을 보면 작가의 동생 생각에 가슴 아파한다. 살구나무 가지에 꽂아두었던 약을 마신 동생의 입에 살구꽃처럼 흰 거품이 부글부글 부풀어 여름까지 가지 못했다. 살구나무를 도끼로 찍어내던 어머니의 모습이 바르르 떨던 살구나무의 빽빽한 울음에 담겼다. 마음 꺾인 엄마는 더는 살구꽃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는 툭, 터지던 꽃들 풋것이 풋것을 토해내던 살구나무 흰 그늘이 그립단다.

문학은 고통과 슬픔, 이별과 고독, 갈등과 분노, 가난과 고뇌, 좌절과 절망의 소재가 있기에 우리의 영혼이 성숙하며 문학이 발전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천국이라면 문학은 필요 없을 것이다. 고통과 고뇌가 없으면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삶을 승화하는 것이 문학이다.

신준수 작가의 6남매가 자연 속에서 어렵게 살아온 삶의 여정과 할머니가 들려준 삶의 지혜는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리움이라 더욱 공감한다. 그리운 것들은 눈을 감아야만 보일 때가 있다는 작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는 늘 그리움에 산다.

생명력 있는 지적인 사색과 감칠맛 나는 문장 표현으로 격조 있는 작품을 발표한 신준수 작가는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하였다.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농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저서로 생태에세이 <토끼똥에서 녹차 냄새가 나요>, <잠긴 문 앞에 서게 될 때>와 시집 <매운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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