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활동가 애환 많아…박봉과 외로움 속…책임감과 부담감 밀려와

<정순영의 일하며 생각하며>
정순영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지난번 글에선 내가 NGO 활동가가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내 딴에는 호기심과 실험 정신, 낙천성 등을 언급하며 NGO 활동가의 삶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묘사하긴 했으나 사실 가까운 지인들부터도 ‘NGO 활동가=가난하고 고생스러운 직업’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솔직히 털어놓아야 할 것 같다.

그나마 이런 시선은 ‘안쓰러움’이라도 묻어나지, NGO 활동가가 맞닥뜨리는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스런 시선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남편조차 매일 아침 내가 '옥천사람들 공유공간'으로 출근할라치면 ‘나가서 딱히 할 일이 있느냐?’고 묻곤 한다. 그럼 나는 ‘나가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버럭 소리를 치곤 한다. 그리곤 항상 이 말이 따라 붙는다. ‘자기가 잘 몰라서 그렇지...’

NGO 활동가는 무슨 일 하지?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NGO 활동가인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이유는 당연하다. 사실 옥천과 같은 작은 농촌지역에선 직업란에 ‘NGO 활동가’라고 써 넣을 만한 사람이 손에 꼽을 만큼 적기 때문이다.(엄청 낯선 직업이라는 의미) 물론 지역에도 비영리로 공익적 활동을 벌이는 여러 민간단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새마을회, 바르게살기, 자유총연맹 등과 같은 단체인데 해당 조직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법에 근거해 사업비는 물론이고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 등을 지원하기 때문에 해당 조직에서 일하는 상근자들을 가끔 만나 봐도 본인 스스로를 ‘NGO 활동가’란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

그밖에 위의 단체들처럼 정부 지원을 받아 운영되진 않지만 비영리로 공익적 활동을 벌이는 여러 민간단체들이 우리 동네에도 있지만 동료 NGO 활동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자력으로 ‘상근 활동가’를 두고 있는 단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기자일 때는 ‘기자’란 직업명 자체가 부연설명 필요 없이 내가 하는 일을 고스란히 설명해 줬는데 나의 두 번째 직업인 ‘NGO 활동가’는 설명을 한다고 해도 ‘그래,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일 하는구나’ 정도의 반응을 이끌어내면 그나마 성공한 것이라 해야 할까?

앞서 말한 NGO 활동가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우선 ‘가난하다’ 흠... 확실히 이 일을 하면서 윤택한 삶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 같다. 내 월급은 한 달에 130만원, 4대 보험 등을 제한 실 수령액이 122만 원 정도인데 지난해 12월 국세청이 발표한 전국의 근로소득자 평균 연봉이 3245만 원 정도라 하니 내 연간 소득(1천560만원)의 2배가 대한민국 평균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뭐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편이 돈 좀 버는구나?’란 반응들을 종종 만나는 건 어쩜 당연한 일. 그 다음으로 ‘고생스런 직업’이란 점에 대해선, 다른 건 잘 모르겠고 ‘혼자’라는 어려움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옥천순환경제공동체의 상근활동가가 나 하나이다보니 공동체를 둘러싼 모든 일들의 일차적 대응을 혼자 해내야한다. 공동체 관련 온갖 서류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부터 각종 목적사업을 추진할 예산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일, 그리고 ‘옥천사람들 공유공간’의 전기가 나가거나 화장실이 막혔을 때, 탁자와 의자 등의 비품들을 옮겨야 할 때도 일단 최대한 혼자 해결해야 한다.

후임 사무국장을 찾습니다

이 모든 일들에 대해 보통은 그냥 ‘빨리 해치우자’라며 해내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날이 흐리거나 괜히 기분이 울적하면 ‘내가 이러려고 NGO 활동가가 됐나’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지금은 결혼하고 활동을 그만둔 친한 동네 동생이 있는데 결혼 전 NGO 활동가로 일하며 지역의 온갖 행사 뒤치다꺼리를 다했다. 언젠가 무슨 일로 길거리 선전전 같은 것을 나갔는데 혼자 천막을 지키며 종일 풍선에 바람을 넣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던 그 친구의 이야기를, 그 때는 웃으며 나눴지만 요즘 문득 문득 ‘아 그 동생이 느꼈던 외로움과 고립감이 이런 거였을까’ 싶어 많이 도와주지 못한 것에 한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든다.

NGO 활동가로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일들 대부분이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고 딱히 가르쳐줄 사람도 없기에 매 순간 ‘잘 하고 있는 건가’라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 또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그냥은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으므로 은연중에 나의 활동을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게다가 공동체 활동가가 나 하나이기 때문에 어쨌든 나의 활동이 가치 있다 평가받는 것은 ‘공동체 활동이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 것과 직결돼 있다. 주민들이 보내주는 회비(후원금)를 가장 중요한 운영 재원으로 쓰는 공동체 입장에선 주민들의 후원이 지역 사회를 위해 가치 있게 쓰인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하고 그 믿음을 이어가기 위한 공동체의 활동이 곧 ‘내가 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박봉과 고생, 외로움을 넘어 NGO 활동가로서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끝을 알 수 없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는 이미 발을 들여놓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NGO 활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나와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동료 또는 후배를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어쩜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더 밝게 이야기하고 더 잘 웃고 기운 넘치게 행동하는지도 모르겠다. 우울한 내 모습을 보면 NGO 활동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까봐. ‘공동체 사무국장이 되는 순간 내 활동의 모든 궁극적 목표는 다음 사무국장을 찾는 것’이란 말을 농담처럼 하곤 하는데, 진심이다. 정말 간절하게. 그래서 일단은 뭐든 알아야 관심도 가질 수 있는 것이기에 기껏해야 3년차 활동가인 나이지만 이렇게 지면을 빌려서라도 NGO 활동가의 삶을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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