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 신경림 「낙타」 전문(시집 『낙타』에서)

 

충주 노은 출신의 노시인은 평생을 미천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가엾은 하층민들의 곤고한 삶에 뜨거운 헌신과 사랑을 놓지 않고 살아오면서,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서 생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시로 노래했습니다.

잘난 이들만 판을 치는 세상에서‘ 못난 놈’으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곧바로 자신의 삶의 밑거름이 되고, 마침내 이 시에서처럼 현실을 향한 비판을 넘어 인생에 대한 웅숭깊은 달관의 경지로 확대됩니다.

‘인생은 즐겁고 서러워 살만하다’ 하신 평소의 말씀대로 느림과 단순함의 미학을 깨달은 자만이 향유할 수 있는‘ 청빈의 즐거움’, 그 깊은 뜻이 조금은 헤아려질 듯도 합니다. 문명과 실용적 이익만 우선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시인이란 천상과 지상의 중간쯤에서 모름지기 낙타 우리 한 채를 복원하는 일에 몰두하는 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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