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노래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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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노래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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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0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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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고 아름다운 이육사의 <이육사 시집>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류정환 시인, 충북작가회의

이육사 시집 이육사 지음 범우 펴냄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로 시작하는 시 <광야>를 처음 읽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중학교 아니면 고등학교 국어시간이었을 텐데, 그 희미한 기억은 화자(話者)의 시간 인식만큼이나 몽환적인 데가 있다. 본명은 이원록, 필명 이육사는 죄수 번호였다는 정도의 기억만 남아 있을 뿐, 시험 대비에 복무한 시구들은 할 일을 마치고 뇌리를 떠난 지 오래됐다.

“지금 눈 나리고/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千古)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암울한 일제치하에서도 희망의 씨앗이 되고자 했던 사람, 천년이 흐른 뒤에라도 조국이 독립될 것을 굳게 믿었던 시인의 이름을 이제야 다시 호명해 본다.

이육사는 경북 안동 사람이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힌다”고 노래했던 고향, 열여섯 살 되던 해 대구로 이사하기까지 살았던 고향은 육사의 가슴에 아름다운 심상으로 새겨졌다.

‘내 고장이란 낙동강 가에는 그 하이얀 조각돌이 일면으로 깔리고, 그곳에서 나는 홀로 앉아 내일 아침 화단에 갖다 놓을 차디찬 괴석들을 주우면서 그 강물 소리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봄날 새벽에 유수를 섞어서 쩡쩡 소리를 내며 흐르는 소리가 청렬한 품도 좋고 여름 큰물이 내릴 때 왕양(汪洋)한 기상도 그럴듯하지만 무엇이 어떻다 해도 하늘보다 푸른 물이 심연을 지날 때는 빙빙 맴을 돌고 여울을 지나자면 소낙비를 모는 소리가 나고 다시 경사가 낮은 곳을 지날 때는 서늘한 가을로부터 내 옷깃을 날리고 저 아래로 내려가면서는 큰 바위를 때려 천병만마를 달리는 형세로 자꾸만 갔습니다. 흘러 흘러서…….’(수필 <계절의 오행> 중)

그런 고향을 빼앗겼다는 걸 알았을 때 그는 절규한다. ‘(…) 눈물이 무엇입니까, 얼마 안 있어 국화가 만발한 화단도 나는 잃었고 내 요람도 고목에 걸린 거미줄처럼 날려 보냈나이다.’(윗글 중) 이후의 삶은 그 고향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라 할 만하다.

그에게 시는 행동양식이며 심지같은 것

스무 살 이전의 청년으로 1년 남짓 일본에 가서 신학문을 접하고 돌아온 육사는 1925년 의열단에 가담했다. 북경에 갔다가 1927년 귀국한 그는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됐다. 필명이 된 264는 이때의 죄수번호이다. 글을 발표할 때 외에는 이육사보다 ‘이활’이란 이름을 더 흔히 쓴 것으로 보인다. 조선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육사는 1933년 중국 남경에 설립됐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1기생으로 졸업했다. 그는 군사학을 배우고 권총 사격과 폭탄 제조에 능한 반제 항일전선의 장교 신분이었던 것이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밤마다 내 꿈은 서해를 밀항(密航)하는 짱크와 같애/소금에 절고 조수에 부풀어 올랐다”(시 <노정기> 중)는 고백이나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 서다”(시 <절정> 중),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시 <꽃> 중)라고 노래한 구절에서 항상 쫓기며 싸우는 자의 긴장감을 읽을 수 있다. 놀라운 것은 그렇듯 첨예한 지점에서 나온 시편들이 ‘구호’가 아니며, 누가 읽어도 힘차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자거려/제비떼 까맣게 날라오길 기다리나니/마침내 저바리지 못할 약속이여”(시 <꽃> 중) 같은 시구에 담긴 의지의 순정함은 지극하고 지극해서 일면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육사는 ‘들개에게는 길을 비켜 주는 겸양을 보이지만, 정면으로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서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수필 <계절의 오행> 중) 것을 자신의 길로 여겼다. 또 ‘팔십을 살더라도 속배(俗輩)들이나 하는 유언은 쓰지 않겠다’(윗글 중)고 호언한 그에게 시는 행동양식이며 금강심(金剛心)을 지켜주는 심지 같은 것이었다. 17차례에 걸쳐 체포와 투옥을 반복하던 육사는 광복 전 해인 1944년 1월 중국 북경 주재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

유고집 《육사 시집》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가족과 친지들이 기왕의 발표작들을 수습하고 미발표 작품을 더하여 펴낸 것이다. 삼월을 지나며 돌이켜보매, 육사의 시집을 한번 읽지도 않고 이 땅에서 시를 쓴답시고 나부댄 세월이 민망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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