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나는 깜짝 놀란다. 거울 속 멋진 남자 때문이다. “어, 이게 누구야? 누가 이렇게 잘생겼지?” 일부러 큰 소리로 거울 속 남자에게 찡긋 인사를 건넨다. 거울 속 사나이도 내게 윙크로 답해준다. 그래 맞다. 증세가 이 정도면 ‘자기애’의 범주를 넘어 ‘자뻑’의 경지일지 모르겠다. 그런들 어떠랴. 내가 나를 아직도 이렇듯 긍정적으로 봐준다는데 누가 뭐라 하랴.

자신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비록 아쉬움과 부족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알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사랑하는 ‘자존감’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주춧돌이고, 건강을 지켜주는 명약이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소중히 대하는 사람은 타인의 가치 또한 볼 줄 알고 자신의 그것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들은 상대방의 결점보다 장점을 먼저 보고 크게 보는 맑은 눈을 지녔다. 자녀들이 비록 시험문제 푸는 재주는 좀 모자라도 더 귀한 재능을 가진 것을 볼 줄 아는 부모들은 스스로에게도 너그럽고 만족할 줄 안다.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 자기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에게도 타인에게도 모질고 사납다. 만족할 줄 모르니 끊임없이 채우려 하고 강박에 빠지기 쉽다.

좋아하던 여배우가 있었다. 젊었을 적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나이든 모습 또한 고왔다. 중년 특유의 단아한 모습은 젊은 배우들의 미모에 뒤지지 않았다. 그렇게 곱던 그이 얼굴이 어느 날 변했다. 성형수술을 했던 것인데 내 눈엔 이전만 못해보였다. 배역도 달라졌다. 주인공 역을 도맡아하던 배우가 조연으로 또 악역으로 등장하곤 했다. 아쉬웠다. 성형수술을 왜 했을까. 이해도 되었다. 젊은 배우들과 나이 든 자기 모습을 비교했을 테고, 손을 대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도시도 다르지 않다. 새로 만든 도시, 젊은 도시만 예쁜 게 아니다. 주름 가득해도 여전히 아름답던 오드리 헵번처럼 나이든 도시도 곱고 아름답다. 문제는 시민들이다. 자신의 가치와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자기 도시의 소중함과 가치를 볼 줄 모르는 시민들은 제 도시를 가만두지 않는다. 지우고 없애지 못해 난리다.

재개발과 재건축 그리고 한때 온 나라를 뒤흔들던 뉴타운이 좋은 예다. 단독주택지든 아파트단지든 지어진 지 30년만 지나면 한꺼번에 철거하고 새 아파트를 짓는 것이 당연한 듯 여긴다.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집과 마을들이 그렇게 지워졌고, 내가 뛰놀던 골목과 거닐던 거리들이 그렇게 사라졌다.

오래된 집과 마을과 도시를 쉬이 없애지 않고 고쳐 오래 쓰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집이건, 학교건, 교회건, 시장이건 뭐든 30년만 지나면 지우려 한다. 자기를 부정하고 폄하하는 ‘자학도시’의 시민, 제 몸에 상처를 내는 ‘자해도시’의 시민이 되지 못해 안달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듯 어른들을 공경하듯 오래된 건물과 장소를 소중히 여기자. 오래된 마을과 도시를 함부로 지우지 말자. 할 수 있는 한 지혜를 다해 고치고, 오래오래 아껴 쓰자. 도시는 물건이 아니다. 몇 년 쓰고 버려도 좋은 가전제품 같은 게 아니다. 물건이 아니라면 도시는 무엇일까? 도시를 생명체로, 아니 인격체로 보면 어떨까?

나를 이만큼 키워준 부모님처럼, 내가 보살피고 돌봐야 할 자녀처럼, 나의 연인처럼, 배우자처럼 우리 도시를 대한다면 어떨까? 자학도시의 시민, 자해도시의 시민만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하듯 도시에게도 말해주어야 한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뉘우치고 다시 사랑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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