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길 곳곳 동해안 산길에 가로막혀

얼마를 걸었을까. 봉수대 안내판이 정상 방향 400m를 가리킨다. 반가운 마음에 진로를 바꿔 봉수대로 향한다. 잘게 깬 조약돌 길을 허우적거리며 올랐더니 통신사 철탑이 먼저 보인다. 1895년까지 운영하였던 봉수대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곳은 서울 목멱산 봉수대와 수원 화성 봉수대 외에 대부분 파괴되었고, 그 자리에는 묘(墓) 아니면 통신용 철탑이나 군 시설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곳 고성군 현내면 마차진리 405번지 술산봉수는 구장천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남쪽 거진읍 반암리 정양산봉수로 전달했다고 쓰여 있다.
 

술산봉수(戌山烽燧). GPS 좌표 : 북위 38˚31’.6 동경 128˚24’35.1

DMZ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인 강원도 평화마을 조성사업으로 복원하였다는데, 봉돈의 구조는 단순하게 돼 있어 실제 횃불이나 연기가 제대로 구현될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뭐 요즘에 와서 불이든 연기든 피울 일이 있겠는가, 그저 상징으로 족하지 싶다. 기대했던 바다는 잔뜩 흐린 날씨 탓에 거의 보이지 않고 반대편 멀리 흰 눈 덮인 백두대간 줄기가 희미하다.

봉돈 사진을 찍어 청주의 ‘문화사랑모임’ 정지성 회장에게 카톡으로 보낸다. 필자가 2대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문화사랑모임은 1995년 8월 광복 50주년 기념 통일기원 전국봉화제, 1996년 8월 충청북도 정도 100주년 기념 전국봉화제를 개최한 이래 매년 정월대보름을 기해 청주 것대산봉수대에서 봉화제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2004년 10월에는 청주에서 개최된 제85회 전국체육대회를 기념하여 전국봉화제를 개최한 바, 이때는 전국의 봉수대와 현지 동호회를 방문 연계하고 한국성곽학회와 함께 ‘한국의 봉수 학술대회’ 개최, ‘전국봉화제 수련대회’ 그리고 체전 전야제 형식으로 전국봉화제를 올린 바 있다. 당시 봉화제추진위원장으로서 진두지휘를 했던 정 회장은 봉화제에 빠진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취해 있는 봉수문화애호가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최북단 소재 봉수대를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마차진리 복지회관은 경로당에 민박을 겸하고 있다.

해안길 가로막는 산길 많아

봉수대에 빼앗긴 시간을 벌충하려고 눈 쌓인 산길을 속도를 내었더니 마차진 1.3km 이정표와 함께 널따란 들마루와 벤치가 손짓을 한다.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편히 쉴 수 없다.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마시고 발길을 재촉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길 위에 묘 하나가 놓여 있는데 봉분이 거진 다 무너져 내렸다. 어이쿠! 내 부모님 산소보다 더 하구나. 한식날을 기해 사초를 해야지, 생각하며 걷다보니 이윽고 데크 계단을 따라 내리막이다. 마차진 종점 팻말이 꽂혀 있다. 4.2km 산길을 달리듯 넘어왔다.

평지로 내려왔으나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쉴 염두도 못하고 서둘러 행길을 따라 간다. 커다란 2층 뷔페집은 드넓은 주차장과 건물이 텅 비어 아예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고개를 넘으니 여러 TV에 방영됐다는 간판만 커다란 작은 젓갈가게 백열등이 반가워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나누었다. 또 한 모퉁이를 돌아나니 출입신고소가 보인다. 잠시 마차진 해변과 앞에 보이는 섬을 촬영하고 계속 걷는다. 길가에 ‘일만이천봉 여행사’ ‘해금강 횟집’ ‘민박안내’가 함께 씌어진 입간판이 나오고 곧 이어 마차진리 복지회관 겸 경로당 겸 민박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곳도 사람은 없다.

젓갈가게에서 일러준 대로 금강산콘도를 지나 해변길로 들어서니 이제까지의 철조망과는 달리 색칠한 쇠창살을 친 해변이 나타난다. 가로수에 박힌 ‘제1경 관동별곡8백리길 걷기/자전거길 ↑(화살표) 고성군’ 이정표는 저 멀리 대진항 등대 쪽을 가리킨다. 저곳까지 가야 저녁밥과 잠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진다. 아주 어둡게 전에 도착해야 할 텐데… 발걸음을 재촉한다. 해변길에서 내 또래 노인을 만나 나란히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방금 대진등대에 불이 켜졌다.

 

대진항의 ‘된장찌게’ 맛

도로변 가게들이 죄다 문을 닫았고, 사람들이 뵈지 않는다고 묻자, 이런 벽진 곳에 젊은이들이 살겠냐며 다들 대처로 떠나고 나 같은 늙은이들만 남았단다. 6·25 전후해서는 어땠느냔 질문엔 즉각 답변이 돌아왔다. 말로 다 못할 고생을 했다기에 다시 물었다. 몇 살 때였는가, 열다섯 살? 그럼 현재 나이는…? 여든 둘이오. 어이쿠, 나보다 9년이 더 자셨네. 참 정정하신 모습이다. 대진1리 마을 초입에 이르자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화살표가 보이고 해수욕장이다. 청년노인과 작별하고 작은 고개에 이르러 대진등대로 올라간다. 이제 사위는 완전히 어둠으로 쌓이고 등대불이 따뜻하게 빛난다.

마침내 대진항 포구에 도착했다. 환영인사는 멍멍 짖는 흰색 개와 ‘산란하러 들어오는 도루묵을 포획하지 맙시다’ 프래카드. 적막한 가운데 대진항 수산시장이라 불 밝힌 2층 건물로 들어가니 딱 두 집 가게만 남아서 정리를 하고 있을 뿐 회를 먹으러 온 손님은 없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을 바라보며 가다보니, 영화 판도라 촬영장소라는 안내판이 서 있고 몇 개의 식당 그리고 더 가면 횟집 마당이 구획돼 있다. 불 켜진 횟집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생선회 값이…. 발길을 돌려 동네분들 단골로 보이는 식당에서 된장찌개와 처음처럼 한 병으로 첫날 하루를 결산한다. 첨 듣는 생선이름들로 된 매운탕류는 2인 이상 주문에 2만원이다. 바닷가에 와서 먹는 된장찌개도 맛은 좋았다. 민박집 추천을 받아 오늘하루 긴 여정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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