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코스모스」

지난 팔월 아라비아 상인이 찾아와
코스모스 가을 신상품을 소개하고 돌아갔다
여전히 가늘고 긴 꽃대와
석청 냄새가 나는 꽃은
밀교密敎에 한층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인다

헌데 나는 모가지가 가는 꽃에 대해서는
골똘히 바라보다 반짝이는
조약돌을 머리에 하나씩 얹어주는
버릇이 있다 코스모스가 꼭 그러하다

가을 운동회 날 같은 맑은 아침
학교 가는 조무래기 아이들 몇 세워놓고
쉼 없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저 꽃의 근육 없는 무용을 보아라

이제 가까스로 궁티의 한때를 벗어났다 생각되는
인생의 오후, 돌아보면 젊은 날은 아름답다

코스모스 면사무소 첫 출근 날 첫 일과가
하늘 아래 오지의 꽃밭을 다 세는 일이었던,
스물한 살 지방행정서기보

바람의 터번이 다 풀렸고나 가을이 깊어간다
대체 저 깊고 푸른 가을 하늘의 통점은 어디인가
나는 오늘 멀리 돌아다니던, 생활의 관절
모두 빠져나간 무릎 조용히 불러 앞세우고
코스모스 길 따라 뼈주사 한 대 맞으러 간다

─ 송찬호 「코스모스」 전문(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에서)
 

‘언제나 트이고 싶은 마음에 / 하야니 꽃피는 코스모스였다. //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 물결 같은 그리움이었다.’

50년대 이형기 시인이 코스모스에 인간의 근원적 애상을 실어 노래한 이후 이 꽃은 이제 송찬호 시인의 동화적 상상력을 만나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하게 됩니다.‘ 코스모스 면사무소’에 첫 출근한 스물한살 지방행정서기보의 첫 일과가 하늘 아래 오지의 꽃밭을 세는 일이라니.

시인은 문명으로 오염되어 차갑게 얼어붙은 세상을, 특유의 동화적이고 신비스러운 마법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치유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신선한 자연주의적 상태로 복구하려는 그의 노력이 이렇게도 눈부신 언어의 보석 상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순수한 인간의 영혼을 위하여‘ 바람의 터번을 풀어헤치고 가을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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