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구신화스믈여섯번째이야기

"어허! 그건 정말로 이상하네요?"

벌구는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다. 그로서도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도무지 어이가 없고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참, 이상하지요?"

"네 정말로 이상해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대요. 출신 가문이 좋고 장래가 보장되어있는 촌장딸을 택할 것이지 왜 하필이면 보잘것 없이 미천한 여자 종을 택했을까하고..."

"어허! 그거참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요? 저는 말입니다. 그렇게 별 것도 아닌 지극히 당연한 걸 가지고서 사람들이 이상스럽게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이상하다는 뜻으로 말한 것인데..."

벌구가 오히려 의아한 눈빛으로 여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에? 어머머! 그 그럼...."

이번에는 여우리가 어이없다는 듯 말을 잠시 끊었다.

"생각해 보세요. 기왕에 상으로 받는 거라면 기분좋게 받아야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자기 맘에 쏙 드는 것을 골라잡아야 하지요. 상을 받고도 괜히 찜찜한 기분이 든다면 그건 차라리 상을 받지 않는 것만 못하게 되지요. 제 생각에 그때 아버님께선 틀림없이 인물 본위로서 여자를 골라 택하셨을 겁니다."

"하, 하지만, 자기 딸을 무예가 출중한 남자에게 시집보낼 목적으로 일부러 그런 대회까지 주선했던 하늘말촌 촌장님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세요. 그게 얼마나 기가막히고 당혹스럽고 또 쑥스럽기까지한 일이겠는지... 따지고보면 그 대회는 결국 자기 딸이 아닌 자기 여자 종을 좋은데 시집보내기 위해 애써 치루게 된 셈이 되어버렸잖아요?"

"하하... 여우리! 한가지 물어봅시다. 아니, 참! 여우리 당신의 지금 나이로 보건대 그때는 아예 태어날 생각도 못했겠지만, 그냥 들었던대로만 말씀해 보세요. 그 하늘말촌 촌장의 따님 인물이 지극히 별로였다지요? 그에 반해 촌장 딸 옆에서 시중을 들며 서있던 어린 여자 몸종의 인물이 훨씬 더 나았을 테구요...."

"그, 그건... 사실이에요. 아, 네, 맞아요. 모두들 그러더군요."

여우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아버님께서는 촌장 딸의 머리가 여러모로 신통치 않았음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원래 현명하고도 예쁜 여자들은 남들 앞에 나설 때 절대로 자기 미모와 맞먹거나 비슷한 수준이 되는 여자와 함께 다니지 않아요. 언제나 자기보다 한끗 아래 수준의 인물을 지닌 여자랑 함께 다니지요. 이것은 키가 큰 사람 옆에 키가 작은 사람이 따라붙어줘야만 키가 더 크게 돋보여진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인물도 신통치 않은 여자가 자기보다 훨씬 잘난 여자를 옆에 두고 있었으니 그 결과야 뻔하지 않겠어요?"

벌구는 이제 여유있게 팔짱을 껴보이며 말했다.

"그러면, 벌구님의 아버님께선 한평생 그런 식으로 살아오셨나요?"

"그렇다니까요! 내 성격이나 아버님 성격이나 그런 면에선 매우 닮았어요. 이와 조금 동떨어진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 아버님께선 총각시절, 그 쟁쟁하고 지체 높은 집안 가문에서 들어오는 청혼도 모조리 마다해렸다지요. 그 여자 인물이 신통치 않거나 아버님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예요. 그러다가 아버님은 엉뚱하게 자기집 마차를 끄는 마부의 딸을 우연히 한번 보시고 홀랑 빠져서 죽자사자 청혼을 하셨다지요. 그 바람에 우리 잘난 9형제가 태어나게 되었고 아버님께선 그 뛰어난 무예 실력을 가지시고도 변변한 출세도 하지 못한 채 늘 왕족 장군 자제들의 무예 지도를 해주는 사부 역할로 만족하셔야했습니다. 즉, 출세길이 완전히 막혀버리셨던거죠."

"어머머! 그, 그건 왜요?"

"생각해 보세요. 상급자가 기껏 자기 딸을 준다고했는데도 그 인물이 맘에 안든다고 냉정히 거절해 버리곤 했으니 어느 누가 예쁘게 봐주겠습니까?"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벌구의 말에 여우리는 잠시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갑자기 놀란듯 소리쳤다.

"아, 참!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잠시 중요한 걸 잊고있는데요?"

"뭐요?"

"물이요. 물!"

"아, 참! 그렇군요. 어쩐지 말을 하면서도 목구멍이 자꾸만 따갑고 입안이 근질거리더라니... 자, 갑시다. 우선 목이라도 좀 축이고 봐야지."

벌구는 여우리를 샘물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려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성벽 틈 사이로 밖을 한번더 살펴보았다.
여전히 그 백마를 타고있는 촌장의 아들과 그를 함께 따라온 패거리들은 혹시 벌구가 있을까하여 지금 주위를 샅샅히 뒤지고 있었다.
그들이 이런 헛다리 짚는 꼴을 보고난 벌구는 가볍게 웃음을 입가에 씨익 흘리면서 여우리를 데리고 좁다란 복도를 따라 햇빛이 별로 들어오지를 못해 약간 어느 어두침침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촛불 없이도 물건 식별은 충분히 가능햇지만, 그러나 작은 글씨로 쓰여져있는 것들은 쉽게 알아보기가 힘이 들 정도였다.

졸졸졸...

물이 흘러 아래로 떨어지는 반가운 소리가 여우리의 두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어머! 물이네요, 물! 어, 어떻게 이런 곳에 샘물이.."

여우리는 반가운 표정으로 얼른 다가가 바위 틈에서 쉴사이 없어 흘러나와 조그만 돌 웅덩이 안에 가득 고이고있는 물을 두 손바닥으로 떠서 정신없이 꿀꺽꿀꺽 들이 마셨다.
벌구도 다가가 시원한 물을 원없이 흠뻑 들이마셨다.

아! 시원하다!
상큼하다!
가슴속 깊은 곳까지 몽땅다 깨끗해 질 정도로 물맛이 기가막히네!

한껏 목을 축이고나니 별안간 두 사람에겐 새로운 힘과 용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벌구님! 그럼, 제가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해서 다시 들려드릴까요?"

여우리가 몹시 상쾌한 얼굴로 벌구를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그럽시다. 기왕에 얘기를 듣기로한 것이니 마저다 듣기로 합시다. 아, 잠깐만! 밖의 사정이 어떻게 되었나 먼저 알아봅시다."

벌구는 다시 그 곳으로 얼른 달려가서 성벽 틈사이로 밖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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