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놈들, 중국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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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놈들, 중국 다시 보기
  • 충청리뷰
  • 승인 2017.03.2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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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지난 주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의 올 시즌 첫 대회를 TV로 지켜본 국내 골프팬들은 참으로 황당했다. 이 대회 마지막 날에 충북과 인연이 깊은 김해림 선수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극적으로 우승했는데도 그의 얼굴 등 신체 전면의 모습은 경기 내내 좀체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시상식은 주관 방송사인 중국 CCTV가 아예 중계조차 하지 않았다.

이날 김해림 선수는 자신의 스폰서인 롯데그룹의 로고가 새겨진 모자와 옷을 입고 경기에 임했는데 중국 방송사측이 롯데가 그룹 소유의 성주 골프장을 사드배치 후보지로 내 준 것에 대해 일종의 보복행위를 한 것이다.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감이 이 정도로까지 표출될지는 대회 관계자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스포츠 대회가 파행되는 것이라면 누군가는 한 마디쯤 쓴소리를 할만도 할텐데 행사 관계자는 물론이고 방송 진행자 또한 당시의 상황을 에둘러 표현할 뿐 꿀먹은 벙어리였다. 이를 지켜보면서 대국이라는 중국의 소행이 너무 졸렬하고 조잡하다는 생각만 잔뜩 들었다.

사드로 인한 중국측의 파장은 현재로선 예측불허다. 그동안 국가 정책의 차원으로 중국에 진출했던 현지 기업들은 언제 당할지 모르는 불이익에 불안감만 높이고 있고, 국내 수출기업과 여행업계는 요즘 봄철이 무색하게 난데없는 혹한기를 맞고 있다. 우리로서는 어쨌든 중국에 대해 여러 가지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류가 한창 중국대륙을 휩쓸 당시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K-팝 공연장마다 울려퍼지는 중국인들의 까오리! 까오리! 함성이 어느 순간 ‘까오리 빵즈!’로 돌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까오리는 고려(高麗)라는 뜻으로 한국을 의미하지만 여기에 두 글자 빵즈(棒子)가 붙으면 ‘하찮은 한국놈들’이라는 뜻의 비속어 ‘까오리 빵즈’가 된다. 실제로 요즘 사드 정국에서 중국인들의 SNS를 통해 이 말이 수시로 출몰하고 있다. 여기엔 “너희들이 얼마나 컸다고 까부느냐”는 냉소와 비아냥이 물씬 묻어난다.

이는 한국인이 중국인들을 향해 짱깨 내지 짱꼴라나 ‘떼놈’이라고 폄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떼놈은 두만강 인근의 만주에 살던 여진족을 일컫는 ‘되놈’이라는 말이 원어로, 비록 그들이 나중엔 청나라를 이루어 중국을 통일하지만 결국엔 변방의 미개한 종족 오랑캐에 불과하다는, 다분히 감정적인 반감이 서려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한국과 중국은 유구한 역사를 함께 해오면서도 서로가 체질적(?)으로 상대를 동등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중국에 대해 사대(事大)를 하는 순간에도 여차하면 뒤집을 생각에 늘 충만해 있었고 중국은 한국을 대할 때 하대(下待)의 속내를 한번도 버리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두 나라가 화친과 전쟁을 반복한데 따른 필연적 결과물인지는 모르지만 원초적인 믿음의 구축은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의 혈맹이라는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적으로 무슨 문제라도 생기게 되면 득달같이 중국으로 달려가 스킨십을 나누는 북한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상대의 뱃속까지는 여전히 믿지 못한다.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그리고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대를 이어 내린 가장 핵심의 유훈도 다름아닌 ‘중국을 믿지 마라’였다.

중국은 자국민들이 환호하는 한류에 대해서도 “한류의 모티브인 유가사상은 중국에서 나온 사상인데 그것이 역으로 수출되고 있는 것은 중국의 수치”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등소평은 과거 우리나라에 대해 “한국 정도는 산둥반도 하나로 누를 수 있다”면서 한국을 같은 레벨로 평가하기를 극히 꺼렸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중국굴기 와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이런 인식의 발로라고 보면 된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절대로 정형화된 인식을 주지 않는다. 일제에 맞서서는 강토까지 내어주며 항일의 동지가 되었지만 한국전쟁 때는 한반도 통일의 결정적 순간에 60만 대군을 몰고 들어와 오늘날 남북분단의 원흉이 됐다. 서해에선 총탄까지 맞아가며 어족자원을 싹쓸이 해가는 노략질을 일삼으면서도 서울 한 복판에선 한꺼번에 수천명이 삼계탕을 먹어치우며 우리나라 실물경제의 구세주가 되고 있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가 세계 최고임을 자랑하는 부국이면서도 나라 곳곳에선 여전히 원시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헷갈리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전문가 도올 김용옥은 중국의 이같은 내성에 대해 자신의 책 ‘중국일기’를 통해 분명히 말했다. “중국은 문제다. 중국은 해답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문제로서 주어진다. 그 문제를 잘 풀면 합격하고 못 풀면 떨어지듯이 인생의 굴신(屈伸·굽힘과 폄)이 결정되고 국운의 흥망이 결정된다. 중국은 인간 상상력의 총화라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광막한 무형의 장(場)이다. 이 장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리는가 하는 것은 그것을 인식하는 자의 틀에 따라 결정된다.” 이 말에는 중국을 똑바로 보지 않고선 결국엔 당하고 만다는 경고가 다분히 숨어 있다.

우리에게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면 중국은 가깝고도 불편한 나라가 된다. 그들은 늘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이중성을 숨기지 않았다. 이러한 중국을 우리는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고 그 부작용이 사드보복이라는 괴물이 되어 지금 한반도를 대책없이 덮치고 있는 것이다. 그 결정적 패착이 박근혜 식 이미지 외교다.

중국 전승절에 뜬금없이 천안문 망루에 올라 이것으로 그들의 환심을 다 샀다고 착각했다가 뒷통수를 맞았고, 일본한테는 ‘위안부’라는 그 실체와 역사적 논리를 내팽개친 채 고작 100억원에 나라의 자존심을 팔아먹었는가 하면, 미국으로부터는 국가간 협정은커녕 문서 한 장도 없이 전격 사드를 들여 와 세계 외교사에 전대미문의 굴종의 사례를 기록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작금의 형국이 마치 외세에 의존하려다가 나라까지 말아먹은 구 한말의 몰락을 보는 것같다고 말이다. 당시 임오군란(1882)~갑신정변(1884)~갑오농민전쟁(1894)~청일전쟁(1894~)~러일전쟁(1904~)~을사늑약(1905)이라는 격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안에 따라 번번이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 외세를 불러들이고 이에 의존하려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긴 민족적 비극을 기억하는 것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혈맹이라던 일본과 미국이 요즘처럼 대한민국을 만만하게 업신여긴 적도 일찍이 없었다.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책임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찰에 출두하면서까지도 나라의 안녕은 고사하고 오로지 올림머리에만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저 중국의 떼놈들을 비롯한 세계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또 평가하겠는가.

지난 4년간 우리는 너무도 개념이 없는 사람을 지도자로 여겼고, 그 업보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같은 두려움에 한숨만 나오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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