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된 땅이지만 내 발로 국토 일주” 2년전 결심
3년간 해안일주 마치고 휴전선 155마일 도전 계획

강태재 충북시민재단 이사장

<연재를 시작하며>

도내에서 페이스북 팔로어가 가장 많은 70대는 강태재 충북시민재단 이사장(73)일 것이다. 강 이사장은 '오늘도 걷는다마는'이란 제목으로 도내 이곳저곳의 풍광을 짧고 예리한 글로 소개해 페친들을 사로잡았다. 새해들어 우리나라 남쪽 해안을 일주하겠다는 원대한 뜻(?)을 밝혔고, 마침내 지난 3월 1일 강원도 통일전망대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1차로 ‘동해에서 서해까지 해안선 따라 7000km’를 따라 걷고, 2차로는 휴전 155마일에 도전할 계획이다. 바다가 없는 '내륙의 섬' 충북에서 한 개인의 해안일주 도전은 처음일 것이다. 강 이사장의 야심찬 도전을 응원하며 그의 답사기를 매주 연재하기로 했다.<편집자 주>

마침내 휴전선 동쪽 끝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에 섰다. 눈앞에 펼쳐진 백사장과 잔잔한 바다 저 멀리 구선봉 실루엣이 부처님 누운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해금강을 잡아보려고 새로 장만한 카메라 줌렌즈를 최대로 당겨보지만 잔뜩 찌푸린 날씨 탓에 아스라니 두어 개 섬이 흐릿하게 나타날 뿐이며 금강산은 어림짐작으로나 짚어 볼 따름이다. 왼쪽 가까이 철조망과 동해선 철길과 도로가 나란히 평행선을 이루는데 오가는 기차도 자동차도 없이 적막하다. 이 때, 적막을 깨고 어느 쪽 방송인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뭐라는 소리인지 알아듣진 못하겠다. 어느 편에서건 화해와 협력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아닐 것이니 알아듣지 못하는 게 편할지도 모르겠다. 문득 생각난 것처럼 뒤를 돌아보니 하얀 미륵불상과 그 뒤로 역시 백사장과 바다가 펼쳐지는데, 남과 북이 다를 것이 없는 풍관이다.

한바탕 둘러보며 사진을 촬영하고 나서 의자에 앉아 한숨 돌린다. 비록 분단된 땅이지만 내 발로 국토를 일주해 보자는 욕심을 품은 지 어언 2년. 1차 목표는 ‘동해에서 서해까지 해안선 따라 7000km’를 걷는 것이고, 2차로 휴전 155마일에 도전하려는 것이다. 가족들은 물론 주변에서 다들 무모하다, 만용이다, 만류했다. 그러난 기회 있을 때마다 의지를 내보이며 걷기를 하겠노라고 공표해 왔었다. 당연하게 준비도 했다. 전부터 해온 헬스로 근력을 키우고 답사나 걷기모임에 참가하여 체력을 다져왔다. 또한 큰 맘 먹고 DSLR 카메라를 마련하여 몇 차례 촬영 테스트도 했다.
 

통일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쪽. 왼쪽에 철조망과 철도, 도로가 보이고 저 멀리 구선봉이 동해를 향해 누운 부처님 형상으로 보인다.

통일전망대 출입신고 대장정 첫발

당초 1월 1일을 D-Day로 잡았으나 이런저런 행사 때문에 결행하지 못하였다. 2월도 다 갈 무렵, 결심을 굳혔다. 3월 1일 새벽 통일전망대에서 일출을 보리라. 그러자면 2월28일 출발해야 하는데, 급작스런 사정으로 3월1일 새벽에서야 집을 나섰다. 북청주~동서울~대진까지 버스편으로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나서 고성군 현내면사무소 당직 여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친절한 설명과 함께 택시를 불러주었다. 제진검문소에서 통일전망대까지 5km는 도보가 금지된 구간이어서 차량이동만 가능하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택시를 타고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 가서 택시기사와 함께 신고서를 작성, 통일안보공원 관람료 1,500원(경로우대)를 내고 제진검문소를 통과해야 되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내디딘 대장정의 출발점에 선 감개를 뭐라 표현할까. 이제부터 몇 날 몇 달이 걸릴지 모르지만 내 발걸음으로 한발자국씩 딛고 걸어갈 길에 대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어쩌지 못하겠다. 남과 북을 번갈아 바라보며 끊어진 철길, 닫힌 도로가 다시 열리고 상생의 날이 어서 오기를! 한반도에 영구 평화와 번영 그리고 민주주의가 꽃피는 새날이 오기를 빌고 또 빈다. 잠시, 지난 2005년 평양을 거쳐 백두산에 올랐을 때 백두대간 최고봉 장군봉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며 남북의 교류협력의 증진과 평화통일을 빌었던 감격의 순간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351고지 전투전적비, 6·25전쟁 체험전시관을 둘러보았다. 건물과 시설은 낡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전쟁 무기와 군수물자 그리고 이 지역 일대에서 벌어진 치열했던 공방전을 되새겨 볼 수 있었다. 351고지 전투를 비롯해서 고성지역, 건봉산지구, 현내지구, 설악산지구, 향로봉지구, 월비산지구 전투 그리고 동해안 유격전은 휴전을 앞두고 빼앗고 빼앗기기를 반복하는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전투로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나쁜 평화 없고 좋은 전쟁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기다리고 있을 택시기사를 생각하여 서둘러 밖으로 나와 DMZ박물관으로 향하는데, 기사님 왈 "거기 뭐 별로 볼 거 없다"고 애써 만류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도립박물관인데 조용하기만 해서 기사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조금 더 내려와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는 아예 정문을 닫아버렸고 커다란 돌에 새긴 통일번영기원비(統一繁榮祈願碑)만 우뚝 서있다.

순순히 말 잘 듣는 늙은이가 짠했던지 화진포에 가면 볼 게 많으니 거기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지만, 걷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며 검문소 지나거든 명파리 입구에 내려달라 했더니 좀 안타깝다는 눈빛을 보인다.
 

최북단 명파초등학교 신입생 환영 플레카드 내걸린 교문 안으로 아름다운 교사가 보인다.

금강산 중단, 인적없는 고성

명파리 초입으로 들어섰다. 이제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이다. 그런데…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길가 수산물 직매장, 식당, 부동산 등 가게나 민박집 모두 문을 닫았고, 인기척마저 없다. 아까 택시기사가 했던 말,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고 남북관계가 악화되니 아무 것도 안 된다며, 불만을 토로하던 것이 생각났다.

황량한 도로를 얼마쯤 더 걷다보니 멋진 벽돌 건물로 된 명파초등학교가 나타났다. 교문에 ‘권은혜 어린이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플래카드를 걸어 놓았다. 신입생이 단 한 명이다. 문안으로 들어서니 길가 쪽 담장아래 돌하르방이 서 있다. 웬 돌하르방? 다가서보니 시비였다. “그리움으로/여기 섰다/파도처럼 설레는 그리움으로(중략)/저 허물어진 논과 밭을 지나/동강난 철둑길을/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는데/南으로 千里/바닷길 七百里/濟州의 돌하르방은/예까지 와서 더 갈 곳이 없다//元山을 지나 會寧으로 갈까나/하얼빈을 거쳐 시베리아로 갈까나(이하생략)” 찾아보니, 1988년에 세운 서귀포 한기팔(韓箕八) 시인의 시비였다.
 

최북단 명파해수욕장은 널따란 광장에 비치하우스, 승마교육센터가 이웃해 있다.

‘최북단 명파 해수욕장’ 표식을 따라 맑은 개울을 건너 바닷가로 향한다. 명파DMZ 비치하우스라 쓰여진 2층 건물이 휑뎅그렁하고, 한국재활승마교육센터라는 곳은 말들이 한가로운데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하다. 해변은 철조망으로 꽉 닫혀 있고 ‘8월 21일 해변폐장 절대 수영금지’ 등 플래카드 2개, 경고판 5개가 가로막아 선다.

안내표지를 따라 명파해변을 돌아 도로변으로 올라서니 곧장 산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한참을 올라가니 ‘관동팔경 녹색경관길’ 마차진 3.7km 이정표에 더부살이 하듯 ‘해파랑길’ 표지가 손바닥만 하게 붙어 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이어지는 산길 고갯길을 몇 번이고 오르내리는데 바다는 보이지 않고 파도소리만 들린다. 가끔 잔설이 남아있고 어쩌다 잡목 틈새로 살짝 바다가 보이기도 한다. 바닷가로 발길을 드려놓으려 하면 어김없이 가로막는 경고판을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새삼 최전방지역임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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