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내 안의 시인」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
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
제비꽃만 보아도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어쩔 줄 몰라하며 손끝 살짝살짝 대보던
눈빛 여린 시인을 떠나보내고 나는 지금
습관처럼 어디를 바삐 가고 있는 걸까
맨발을 가만가만 적시는 여울물 소리
풀잎 위로 뛰어내리는 빗방울 소리에 끌려
토란잎을 머리에 쓰고 달려가던
맑은 귀를 가진 시인 잃어버리고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소리에 묻혀 사는가
바알갛게 물든 감잎 하나를 못 버리고
책갈피에 소중하게 끼워두던 고운 사람
의롭지 않은 이가 내미는 손은 잡지 않고
산과 들 서리에 덮여도 향기를 잃지 않는 사람
산국처럼 사는 곧은 시인 몰라라 하고
나는 오늘 어떤 이들과 한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 시인이 사라진다는 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최후의 인간이 사라지는 거라는데
지팡이로 세상을 짚어가는 눈먼 이의
언 손 위에 가만히 제 장갑을 벗어놓고 와도
손이 따뜻하던 착한 시인 외면하고
나는 어떤 이를 가슴속에 데려다놓은 것일까

─ 도종환 「내 안의 시인」 전문(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에서)

새로 핀 제비꽃이 너무 예뻐서 손 살짝 대보는 눈빛이 여린 사람, 풀잎에 닿는 빗소리 들으려 토란잎 우산 쓰고 달려가는 맑은 귀를 가진 사람, 바알간 감잎 주워 책갈피에 소중하게 끼워두는 마음이 고운 사람, 불의와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산국 향기를 지닌 성정이 곧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시인의 소망이 간절합니다.

‘내 안에 시인이 사라진다는 건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최후의 인간이 사라지는 거’라는 프로이트의 경구를 상기시키면서 시인은 마땅히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에 대한 순결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늘 좋은 삶을 살면서 깨끗한 언어로 옷을 지어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주고자 애쓰는 시인의 평소의 꿈이 잘 나타나있는 시입니다.

누가 그랬지요.‘ 시는 우리가 꿈꾸는 것들에 대한 찬양이며, 우리가 미워하는 것들에 대한 설득’이라고. 그렇습니다. 세상에 대한 찬양과 설득을 위해‘ 내 안의 시인’ 하나씩 애써 가슴에 품고 시가 건네주는 삶의 자양분을 마다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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