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박아롱 변호사

▲ 박아롱 변호사

대통령 탄핵심판청구 인용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고 나서 돌아보니, 지난 해 가을 태블릿PC에 관한 보도가 시작될 즈음부터 탄핵심판 청구가 인용된 2017년 3월 13일까지는 그 어떤 때보다 치열하게 서로의 의견을 나눈 시간이었다. 많은 이들이 집이나 직장, 모임에서,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스스럼없이 자신의 뜻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했다.

이번 일이 생기기 전까지 나는 정치적 문제에 관한 입장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일을 삼가는 편이었다. 행여 경솔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또는 내가 잘 모르는 문제에 관해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무지를 드러내지는 않을까, 나의 정치적인 입장이 업무상 만나게 되는 공직자나 의뢰인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또는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사항들에 지레 두려움을 갖고는 정말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나 아예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가 아니면 가급적이면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피했다. 처음부터 성향을 드러내고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상대방도 거의 나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으므로, 투표권이라는 것을 갖게 된 지 16년 이상이 흐르도록 거리낌 없이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갖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지난 해 가을 마치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국정농단 사건이 계속 밝혀지면서 어느 순간 마음속의 이야기들이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동안 자고 일어나면 매일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너도, 나도 그에 관한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고 진위 여부를 가리고자 노력하며, 이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더 이상 어색하거나 꺼려지지 않았다.

혹자는 국론분열의 심각한 위기를 수습하고 국민대통합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론은 무엇이고, 분열은 또 무엇인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자유를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다소 시끄럽고 지난하더라도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국민대통합은 상대방의 의견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포용하는 가운데 상생할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지, 모두가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일을 뜻함은 아닐 것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헌법질서보다 자신과 다른 어떤 개인의 사익을 우선시하여 국정을 농단하는 일은 다시는 생겨서는 안 될 뼈아픈 상처이지만, 이처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기에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의견을 표현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나가는 과정에서 바르게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우고, 그 목소리가 실제로 국가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목도하는 소중한 경험을 얻고 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통치구조의 위기상황과 사회갈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가치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우리는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사처럼 지금 이 진통을 겪으면서 우리는 국가와 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고민의 결과를 떳떳하게 드러내게 되었다. 탄핵심판 청구 인용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사와 재판 등 형사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여전히 탄핵을 반대하며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준비하는 등 진통이 계속되고 있으나 그 과정에서 이제는 서로를 포용하고 상생으로 나아가는 방법까지 배우게 되지 않을까. 시끄러운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 사회는 한 걸음 한 걸음 성숙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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