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탄핵 정국이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언론의 시련도 컸다. 특히 탄핵반대 집회에선 기자들이 쫓겨나고 얻어터지는가 하면 언론 전체가 그동안의 쓰레기라는 오명을 넘어 아예 처단해야 할 주적으로까지 매도됐다.

공공의 취재 현장에서 언론이 이렇듯 노골적으로 배척받기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처음이다. 그 때도 기자들은 시위군중들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고 TV 카메라 기자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건물 등에 숨어서 촬영하는 고역까지 감수해야 했다. 지금이야 방송기자재의 발달로 쥐도 새도 모르게 현장을 담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카메라 기자들은 큼지막한 쇠뭉치(?)를 어깨에 둘러메야 했기 때문에 금방 노출되는 취약점이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기자들이 군중들로부터 들은 욕은 똑같다. “기자xx들 기사 똑바로 쓰라”는 것이다. 언론이 시위현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게 보도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87년엔 취재한 내용을 왜 보도하지 않느냐는 주문이 하나 더 달렸다는 것이다. 시위 자체가 반정부 성격을 띠다보니 기자가 죽어라 취재해도 실제 보도로 이어지기까지는 지금처럼 자유롭지가 못했다.

이번 탄핵 정국은 언론 영역에 한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만들어냈다. ‘종편의 역설’로 통칭되는 이른바 종합편성 방송사들의 박근혜 비판, 박근혜 까기다. 4년전 박근혜 정권 탄생의 1등 공신은 단연 종편이었다. 이 때 종편은 보수의 영구집권을 획책한 이명박의 뜻에 벗어나지 않게 야당 후보 문재인을 흠집내고 깎아내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 약발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보통 사람들의 정치담론은 십중팔구 종편 논리를 모방했는가 하면 특히 농촌의 노령층들은 아예 종편의 노예가 될 정도였다.

그랬던 종편이었는데 이번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박근혜 죽이기에 맹활약한 것이다. 탄핵반대 집회에서 언론이 수난을 당한 것은 이런 배경이 크다. 박근혜로선 배신의 트라우마를 언론에서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번 대통령 탄핵의 와중에도 언론은 여전히 그 이면의 부끄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박근혜 탄핵의 결정적 시발점은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다. 만약 jtbc가 권력의 외압에 굴복해 이를 보도하지 않고 묻었더라면 최순실은 지금도 청와대를 들락거리며 국정을 농단하고도 남았을 인물이다. 이 태블릿PC를 jtbc에 처음 제보한 노승일은 법정에서 분명히 말했다. 자기의 경험상 오직 jtbc만 보도할 것같아 그랬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언론사들은 그저 따라온 것 뿐이다. 그러면서 언론의 숨길 수 없는 DNA 즉 일단 특종을 빼앗긴 것에 대한 면피 내지 경쟁심리가 다른 종편들을 의리없게도 박근혜 저격수로 돌변시켰을 수가 있다. 국정농단에 대해 취재를 다 마쳐놓고도 권력의 눈치를 보던 모 언론사가 jtbc에 선수를 빼앗기고 나서야 뒤늦게 비몽사몽 특별취재반까지 꾸린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몇몇 언론의 용기가 없었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고영태 국정농단으로 돌연변이될 가능성이 아주 컸다. 과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채동욱 검찰총장 불륜사건으로, 정윤희 사건을 찌라시와 청와대 문서유출사건으로 각색해 재미를 본 박근혜 정권의 내공을 잘 알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최순실이 아닌 고영태를 국정농단의 전면으로 내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안간힘이다.

언론의 직무유기, 그리하여 국민의 이름으로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또 있다. 박근혜가 탄핵되자마자 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 청와대의 참모, 보좌진을 경쟁적으로 힐난했다. 현직 대통령이 이렇게 추락하기까지는 제대로 진언하고 간언(諫言)하지 못한 그들에게 책임이 크다는 논리다. 맞는 얘기이지만 참 한가한 소리다.

권력자에게 아랫사람들이 할말을 다 한다는 건 한가지 전제가 없이는 어림 택도 없다. 그 권력자가 자신에 대한 비판까지도 수용할만한 체질적인 금도를 갖지 않고서는 이러한 얘기는 때만 되면 나타나는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불과하다. 부처님의 가운데 토막같은 순한 사람도 일단 권력을 잡으면 자신에 대한 어깃장에 그렇게 너그럽지 못하다. 이는 권력의 속성이자 인간의 본능이다.

만약 청와대 참모가 박 전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고 하자. 돌아 오는 건 “천벌을 받을 사람이니 찍어내라!”이다. 해외출장 중에 해고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이렇게 당했다. 자기고집이 강한 자치단체장이 참모로부터 귀에 거슬리는 비판과 조언을 들었다면 아마도 당사자는 자리를 보전하기가 힘들 것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여차하면 직책을 내려놔야 하고 권위적인 체제에선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는 진언을 왜 못했냐고 마냥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민주국가 체제에서 이럴 때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집단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언론이다. 한데 우리 언론은 국가정세의 가장 위중한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취재도구를 놓고 보자고 하니까 그대로 쪼르르 청와대로 들어가 머리를 조아렸고, 기자회견장에서는 질문 하나 없이 그저 받아쓰기만 하는 걸로 역할을 끝냈다. 이런 언론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청와대 참모들을 질책하고 측근들을 나무라겠는가. 대통령 탄핵사태에 있어서 언론은 그들과 똑같은 공동정범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국민들은 이번에 대통령 뿐만 아니라 언론도 탄핵했다. 실제로 탄핵정국을 거치며 언론 역시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고 그 파장이 지금 언론인들에게도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최촉하고 있다.

다름아닌 취재를 했으면 보도해야 하고, 불의를 봤으면 정의롭게 파헤치고 비판해야 하는 언론 본연의 저널리즘을 회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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