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나경 꿈꾸는책방 점장

 

책방지기가 되어서 참으로 좋았던 일 중 하나는 그림책을 만난 것이다. 가끔 마음에 여유가 있는 날은 그림책 자리에 앉아 눈 가는대로 손 가는대로 한 권씩 꺼내 조심스레 펼쳐보곤 한다. 그림책은, 결코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었다. 몇 장 되지도 않는 얇은 책 안에는 인생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래서 그림책을 읽으면 따뜻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때론 슬프기도, 행복하기도 했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된 윤석남 작가의 그림책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 씨>. 마치 작가의 전시회 도록을 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이 책에서, 한없이 작아져 깃털보다 가벼워진 엄마를 안고 서 있는 그림 한 컷에 오래도록 눈이 갔다. 그때서야 엄마가 살아계실 때 업어드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눈이 시렸다.

가슴이 아린 그림책은 또 있었다. 201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나라의 동화와 그림책을 일본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는 일에 힘을 쏟았던 재일조선인 2세 변기자 선생의 글을 번역한 <춘희는 아기란다>. 그림은 <강아지 똥>으로 유명한 정승각 선생이 그렸다.

히로시마 무기 공장에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남편을 찾아왔다가 원자폭탄이 터져 남편을 잃은 춘희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 춘희는 피폭을 당한 채 태어났고, 엄마는 낯설고 설운 일본땅에서 홀로 아이를 키웠다. 열 살이 되어도 스무 살이 되어도 서른 살이 되어도 자라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춘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아파하는 일본인 소녀 유미. 서로 보듬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픈 역사가, 전쟁의 잔인함이 오롯이 느껴져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먹먹했다.

그림책을 보며 울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읽는 내내 절로 입가가 올라가는 그림책도 있었다. 단풍나무가 곱게 물든 공원에서 딸이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한번 물어봐.” 아빠는 두 말 않고 딸에게 묻는다. “넌 뭘 좋아하니?” 아이는 신이 나서 대답한다. 그러고는 또다시 아빠에게 이런 저런 것들을 ‘나에게 물어봐 달라’고 한다. 미국 작가 버나드 와버가 글을 쓰고 해외에서 더 유명한 이수지 작가가 그림을 그린 <아빠, 나한테 물어봐>라는 책이다. 아이가 읽어도 좋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읽으면 더욱 느낄 게 많다. 소리 내서 읽다보면 저절로 밝고 경쾌한 아이 목소리가 나온다. 행복이 뚝뚝 묻어나는 참 예쁜 책.

그림책을 보고 울다가, 웃다가…

요시타케 신스케가 쓰고 그린 <벗지말걸 그랬어>를 보면서는 깔깔깔 소리내어 웃었다. 윗도리를 벗다가 옷이 머리에 걸린 짧은 시간동안 아이의 상상력이 저렇게도 뻗어나갈 수 있겠구나,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됐던 책이다.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책 <이유가 있어요>와 <불만이 있어요>를 찾아 읽게 만든 재밌는 책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지난 여름 힘이 되어 준 책은 <여우와 별/코랄리 빅포드 스미스>이었다. 침대 옆에 두고 몇 번을 펼쳐들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은 그림책을 보며 나에게 별과 같은 친구는 누구일까 생각했고, 어느 날은 별이 사라진 뒤 여우가 혼자서 세상으로 나아간 것처럼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나아가야지, 하고 마음먹기도 했다. 몇 번을 되새김질하는 동안 그림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그림책을 보며 울기도 웃기도 하고 또 힘을 얻기도 했다. 얇고 글밥도 적은 또는 글이 아예 없는 그림책 한 권이 무어 그리 대단하냐고, 그림책 따위야 아이들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도서관으로 서점으로 가 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림책을 펼쳐보시길. 천천히 글자 하나하나 입안에 새겨 넣으면서 구석구석 그림 하나하나 눈썹에 담아보시길. 그러고는 눈을 떴다 감을 때마다 침을 꼴깍 삼킬 때마다 그림과 글을 떠올려 보시길. 그 글과 그림이 당신의 지친 삶에 위로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나에게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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