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사회활동 접고 ‘스콧 니어링’ 식으로 생활
장작 쌓아 놓고 월동준비, 시간 날 때마다 밭농사

충북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로 가는 길은 멀었다. 아니 멀다기보다 험했다. 겨울에 폭설이라도 내린다면 세상과 단절될 것 같은 곳이었다. 그런 만큼 자연은 아름다웠다. 마치 속리산의 말티고개처럼 한없는 곡선으로 이어진 피반령고개는 가을이 왔음을 전해주었다. 고갯길을 장식한 나무들은 이제 서서히 물이 들 준비를 하고, 밝은 햇살 아래 보이는 저 멀리 들판은 황금물결로 출렁였다. 풍경화가 따로 없었다. 이게 바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사방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도 나름대로 다 아름다웠다.

장작 넉넉히 준비해놓은 황토집 ‘
▲ 도종환 법주리에는 도종환 시인이 살고 있다. 건강악화로 지난해 3월, 28년간의 교사생활도 접고 시골로 들어온 그는 알려지는 게 싫어 지인들의 방문을 꺼렸다. 그럼에도 이래 저래 소문이 나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시인의 집을 찾아갔다. ‘구구산방(龜龜山房)’이라 이름 붙여진 이 곳은 황토집으로 하늘만 빠끔하게 보일 정도로 산 속에 위치해 있다. 구구산방은 절친한 친구이며 전교조 활동을 같이 해온 모씨가 아픈 동생을 위해 ‘오래 오래 살라’는 뜻으로 명명하고 직접 지었다. 주변을 둘러싼 것이라고는 나무와 물, 돌, 가축 같은 것 밖에 없다. 더욱이 시인이 거처하는 이 곳에는 TV, 신문, 라디오 등의 통신매체가 없어 거의 하루 종일을 자연에 둘러싸여 사는 셈이다. 도착하기 1시간 전에 전화하고 불쑥 찾아가자 시인은 반가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가 온다고 하면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알아요? 방 치워야지, 머리 감아야지, 옷 갈아입어야지…” 함께 간 3명의 ‘불청객’은 일단 집 구경부터 하며 환호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와우~ 정말 아름답다.’ 흐트러진 듯 하면서도 나름대로 질서있게 정리된 공간과 그 주변을 뛰어노는 세마리의 닭, 그리고 하늘을 나는 빨간 고추잠자리. 결코 화려하지 않으면서 운치있고 쓸모있게 지은 집. 뒤꼍에는 시인이 틈 날 때마다 도끼로 아담하게 패놓은 장작이 쌓여 있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추운 황토집의 특성상 장작을 넉넉히 마련해 놓아야 한 겨울을 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시인은 현재 일체의 사회활동을 중단했다. 그럼에도 가까운 사람들의 출판기념회나 애경사, 그 밖의 이런 저런 일이 있어 외출을 하지만 직책은 거의 정리한 상태다. 그러나 아직도 그를 찾는 사람은 많다. 문학단체, 출판사, 신문사, 방송사가 여전히 그의 근황을 궁금해 하고 불쑥불쑥 나타나 인터뷰 하자, 방송에 출연해 달라, 시를 써달라는 식의 귀찮은 부탁을 해온다. 그 중 기자들이 가장 귀찮은 손님이다. 난처한 요청을 받고 그는 이렇게 둘러댔다. “담당 의사한테 혼나요. 몸 추스린 뒤 건강하게 활동하든지, 계속 활동하면서 아프든지 선택하라고 했거든요.”‘초보농사꾼’이지만 밭 열심히 가꿔’ ▲ 구구산방
올 여름에 그는 숲해설가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충북생명의숲가꾸기 국민운동본부에서 주최한 이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식물과 동물들이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시인은 닭과 개, 새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와 함께 사는 닭 세 마리는 이미 한 식구였다. 안 보이면 산너머까지 가서 찾아오고, 때 되면 먹이를 준다고 했다. 그리고 주변의 밭에서는 상추, 쑥갓, 깨, 호박, 도라지 등이 자라고 있었다. 시골 사람들이 ‘노는 땅’만 보면 부지런히 무엇을 심고 가꾸듯 그 역시 시간만 나면 씨뿌리고, 풀뽑고, 물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초보 농사꾼’이라 수확량은 얼마 안되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들에게도 나눠줄 정도로 열매를 딴다는 것.

시인의 이런 생활은 미국의 환경운동가 스콧니어링을 연상케 한다. 그 자신 스콧니어링의 생에 빠졌던 만큼 4시간은 노동하고, 4시간은 자연과 사람 만나고, 4시간은 읽고 쓰는 일을 한다는 것. 한 인터뷰에서 그는 스콧니어링의 자서전 중 귀중한 한 대목을 소개했다.

‘삶을 간소화 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 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있는 만남을 가질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잡힌 인격체를 만들어갈 것’ 등이다. 누가 읽든 수첩에 적어두고 따라하고 싶은 귀절이다. 그러므로 현재 시인도 이 틀 안에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인의 책상에는 ‘쉽게 찾는 우리버섯’과 정도상의 소설 ‘실상사’, 정대호의 평론집 ‘현실작가의 눈’이 놓여 있었다. 부지런히 읽고 쓰는 생활이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그의 홈페이지(http://poem.cbart.org/)를 보더라도 알 수 있지만 창작활동은 아픈 와중에도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다. 그가 사회생활을 접고 이 곳에 들어온 뒤에도 독자들은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와 시집 ‘슬픔의 뿌리’를 만났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라는 산문집은 속리산 골짜기의 황토집에 머물며 숲과 벌레, 고요와 평화, 깊은 사색을 통해 길어올린 맑고 단아한 글이라는 평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그의 시가 전보다 많이 편해지고 자연을 노래하는 내용이 많아졌다고들 말한다.

홈페이지 통해 지인들과 소통
홈페이지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신작시 ‘가을’ 한 귀절 옮겨보자. 시인이 지난 9월 올려놓은 것이다. “코스모스 여린 얼굴 사이에 숨어 있다가/ 갸웃이 고개 들면서/ 가을은 온다/ 오래 못 만난 이들이 문득 그리워지면서/ 스님들 독경소리가 한결 청아해지면서/ 가을은 온다/ 흔들리는 억새풀의 몸짓을 따라/ 꼭 그 만큼씩 흔들리면서/ 너도 잘 견디고 있는 거지/ 혼자 그렇게 물으며/ 가을은 온다.”

이런 신작시 밑에는 반드시 그의 제자나 친구, 독자, 지인들의 소감 한마디 씩이 적혀 있다. “저는 선생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등으로 시작하는 안부인사다. 그에게도 인터넷은 첩첩산중에서 사람과 소통하는 요긴한 매체다.

시간 있으면 풀 좀 뽑고 가라는 그의 말에 밭으로 올라갔다. 30여분 호미질을 한 뒤 시인은 호박과 고추와 파를 저녁상에 올려놓으라며 싸준다. 햇볕과 물과 정성을 먹고 자란 무공해 채소였다. 고마운 마음이 왈칵 들었다. 신문과 TV가 없어도 바깥세상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했으나 어쩐지 시인은 약간 외로워 보였다. 아니 그 보다 몸이 아픈 그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하루빨리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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