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사회활동 접고 ‘스콧 니어링’ 식으로 생활 장작 쌓아 놓고 월동준비, 시간 날 때마다 밭농사
충북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로 가는 길은 멀었다. 아니 멀다기보다 험했다. 겨울에 폭설이라도 내린다면 세상과 단절될 것 같은 곳이었다. 그런 만큼 자연은 아름다웠다. 마치 속리산의 말티고개처럼 한없는 곡선으로 이어진 피반령고개는 가을이 왔음을 전해주었다. 고갯길을 장식한 나무들은 이제 서서히 물이 들 준비를 하고, 밝은 햇살 아래 보이는 저 멀리 들판은 황금물결로 출렁였다. 풍경화가 따로 없었다. 이게 바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사방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도 나름대로 다 아름다웠다.
장작 넉넉히 준비해놓은 황토집 ‘
올 여름에 그는 숲해설가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충북생명의숲가꾸기 국민운동본부에서 주최한 이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식물과 동물들이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시인은 닭과 개, 새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와 함께 사는 닭 세 마리는 이미 한 식구였다. 안 보이면 산너머까지 가서 찾아오고, 때 되면 먹이를 준다고 했다. 그리고 주변의 밭에서는 상추, 쑥갓, 깨, 호박, 도라지 등이 자라고 있었다. 시골 사람들이 ‘노는 땅’만 보면 부지런히 무엇을 심고 가꾸듯 그 역시 시간만 나면 씨뿌리고, 풀뽑고, 물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초보 농사꾼’이라 수확량은 얼마 안되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들에게도 나눠줄 정도로 열매를 딴다는 것.
시인의 이런 생활은 미국의 환경운동가 스콧니어링을 연상케 한다. 그 자신 스콧니어링의 생에 빠졌던 만큼 4시간은 노동하고, 4시간은 자연과 사람 만나고, 4시간은 읽고 쓰는 일을 한다는 것. 한 인터뷰에서 그는 스콧니어링의 자서전 중 귀중한 한 대목을 소개했다.
‘삶을 간소화 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 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있는 만남을 가질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잡힌 인격체를 만들어갈 것’ 등이다. 누가 읽든 수첩에 적어두고 따라하고 싶은 귀절이다. 그러므로 현재 시인도 이 틀 안에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인의 책상에는 ‘쉽게 찾는 우리버섯’과 정도상의 소설 ‘실상사’, 정대호의 평론집 ‘현실작가의 눈’이 놓여 있었다. 부지런히 읽고 쓰는 생활이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그의 홈페이지(http://poem.cbart.org/)를 보더라도 알 수 있지만 창작활동은 아픈 와중에도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다. 그가 사회생활을 접고 이 곳에 들어온 뒤에도 독자들은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와 시집 ‘슬픔의 뿌리’를 만났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라는 산문집은 속리산 골짜기의 황토집에 머물며 숲과 벌레, 고요와 평화, 깊은 사색을 통해 길어올린 맑고 단아한 글이라는 평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그의 시가 전보다 많이 편해지고 자연을 노래하는 내용이 많아졌다고들 말한다.
홈페이지 통해 지인들과 소통 홈페이지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신작시 ‘가을’ 한 귀절 옮겨보자. 시인이 지난 9월 올려놓은 것이다. “코스모스 여린 얼굴 사이에 숨어 있다가/ 갸웃이 고개 들면서/ 가을은 온다/ 오래 못 만난 이들이 문득 그리워지면서/ 스님들 독경소리가 한결 청아해지면서/ 가을은 온다/ 흔들리는 억새풀의 몸짓을 따라/ 꼭 그 만큼씩 흔들리면서/ 너도 잘 견디고 있는 거지/ 혼자 그렇게 물으며/ 가을은 온다.”
이런 신작시 밑에는 반드시 그의 제자나 친구, 독자, 지인들의 소감 한마디 씩이 적혀 있다. “저는 선생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등으로 시작하는 안부인사다. 그에게도 인터넷은 첩첩산중에서 사람과 소통하는 요긴한 매체다.
시간 있으면 풀 좀 뽑고 가라는 그의 말에 밭으로 올라갔다. 30여분 호미질을 한 뒤 시인은 호박과 고추와 파를 저녁상에 올려놓으라며 싸준다. 햇볕과 물과 정성을 먹고 자란 무공해 채소였다. 고마운 마음이 왈칵 들었다. 신문과 TV가 없어도 바깥세상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했으나 어쩐지 시인은 약간 외로워 보였다. 아니 그 보다 몸이 아픈 그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하루빨리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