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배명순 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배명순 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며칠 전 뉴스에서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환경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그리고 17개 생활화학제품 제조·수입·유통사가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이 17개 기업에는 가습기 살균제 주범 중의 하나였던 옥시레킷벤키저도 포함되어 있다. 환경부의 압력이었든 기업의 ‘자발적’ 요청이었든 반가운 소식이면서도 의심의 시선을 지울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이러한 자발적 약속과 그 이후의 진행 상황에 대해 회의적인 경험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제성이 있는 법 제정보다 자발적 협약이 가지는 의의 중 하나는 당사자인 기업 스스로 변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법이 있어도 당사자들이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을 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특히, 어떤 행위에 대한 영향을 알기 어려운 자연환경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처럼 환경보전을 위한 법령이 많고, 강력하며, 잘 정비되어 있는 나라도 드물다. 다른 나라의 좋다는 법령은 대부분 벤치마킹하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밝혀진 법령까지도 우리는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어째든 법은 충분하다. 그런데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법이 문제가 아니라 법 이전의 사회적 문화의 문제인 것 같다. 원래 법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법을 지키거나 법에 걸리지 않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렸다.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가 개발되었다고 알려진 1994년에 충분한 검토와 실험이 선행되었더라면 5000명이 넘는 피해 신고자와 그 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되는 잠정적 피해자들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나 제품과 관련한 법령은 있었지만 기업은 교묘하게 법의 빈틈과 정부의 무능함을 이용하여 경제적 이익을 챙겼다. 2011년 원인모른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것이 밝혀지고, 또 한참이 지난 2017년 초입에서야 관련 기업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 이후에도 피해자는 늘어가고 있다. 그 긴 시간동안 가정에서, 병원에서, 사무실에서 가습기 살균제는 우리의 몸에 파고들고 있었다.

이러한 끔찍한 인재사고와 당사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 그들의 ‘자발적’ 협약에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제품, 내가 하는 행동이 나의 이익에 앞서 다른 사람들과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영향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자발적 숙고와 성찰이 없이는 가습기 살균제 사고는 언제든지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자신의 안전을 자기 혼자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책임 질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는 일생생활의 도처에 깔려있고,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아무리 힘쓰고 노력한다고 해도 기업체를 뛰어 넘는 지식이 없고, 모든 먹거리를 스스로 조달하지 않는 한 칼 자루를 쥐고 있는 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이다. 이것이 많이 늦었고, 미흡하고, 기대감은 적지만 오늘의 자발적 협약에 또 다시 기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2011년 이후 유해화학물질 배출량 1위를 달리고 있는 충청북도는 2014년에 관련 시군 및 기업체들과 자발적 감축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여전히 배출량 1위이고, 2016년도 화학제품 생산량은 전년대비 143.3% 급증하였으며, 전국 폐암발생률도 1위를 기록했다. 그 자발적 감축협약에 의해 얼마나 배출량이 줄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으며, 밝히기 싫은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호와 정부의 국정논단이 그랬듯이 감추면 감출수록, 늦추면 늦출수록 그 피해와 갈등은 커져가고 사회적 믿음은 줄어든다. 생화화학제품 안전관리에 대한 자발적 협약, 많이 늦었다. 그래도 진심으로 환영하고 또 기대해 본다. 그리고 우리 소비자들도 더 현명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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