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역사의 충청일보가 창간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편집국 기자들이 주축이 된 노동조합이 지난 9월 16일 신문제작을 거부하고 파업에 들어 간 이후 1개월이 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진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1950년대 ‘이승만 견(犬)통령’사건으로 한때 폐간을 당한 적이 있었긴 하지만 회사 내부갈등으로 이처럼 내홍을 겪은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오늘도 청주 사창대로의 충청일보 사옥에는 ‘임광수는 각성하라’는 등의 프래카드가 어지럽게 내걸려 오가는 시민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가운데 노조원들이 외치는 절규가 거리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충청일보는 해방 다음해인 1946년 대성학원(현 청석학원)설립자인 김원근 선생을 중심으로 청주의 뜻 있는 인사들이 ‘문화창달’의 기치를 들고 창간했습니다. 당시 일간지로는 서울에 조선(1919), 동아(1920)가 있었고 대구의 영남일보(1945), 춘천의 강원일보(1945)가 있었을 뿐이니 현존하는 100여개 전국 종합 일간지 가운데 연륜에 관한 한 그 역사를 자랑합니다.

지금 국회 도서관에 단 한 부 유일하게 보관되고 있는 빛 바랜 국민일보(당시제호) 창간호에는 백범 김구선생의 휘호와 미 군정청장관인 하지중장의 축사가 실려있을 만큼 한국 신문사의 한 페이지로 각인 되어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충청일보는 오늘이 있기까지 충북 지역사회, 나아가 한국언론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충청일보는 1도 1사이던 1990년까지 충북을 대표하는 유일한 신문이었으며 5사가 난립한 현재에도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신문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충청일보의 파업사태는 이미 오래 전 예고된 것에 불과합니다.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의 특수성을 몰이해한 경영주의 잘못된 언론관이 오늘의 사태를 불러왔음은 그 동안 충청일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일찍부터 예견됐었기에 말입니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맥인사, 신문을 기업의 도구나 방패로 악용했던 일, 기업의 논리로 무리하게 이윤을 추구해 기자들을 영업일선에 내 세웠던 일등은 오늘의 불행을 불러온 단초가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최저 생계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임금으로 기자들을 좌절에 빠뜨렸고 결국 그들을 극한 투쟁으로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노조원들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신문사를 제대로 운영해달라는 것, 먹고 살만큼 임금을 현실화해달라는 것, 그리하여 사이비가 아닌 언론인으로서의 품위를 갖게 해달라는 것, 그런 다음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어 지역사회와 독자에게 보답하겠다는 것입니다 . 하나도 그른 말이 없습니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고, 충청일보사태의 모든 책임은 사주인 임광수회장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푸는 것 또한 전적으로 임회장 몫입니다. 임회장은 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안이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직접 청주에 내려와 기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만이 사태를 푸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의 충청일보 사태는 충청일보 구성원들만의 일은 아닙니다. 충북사회, 나아가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충청일보는 조속히 정상화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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