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미군의 산악훈련장이 진천에 조성된다고 하여 해당 지역이 난리다. 앞으로 성사여부까지는 주민반발 등 당연히 지난한 과정을 거치겠지만 사드의 학습효과 탓인지 우리로서는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한 미 군사당국이 현지조사를 거쳐 지난해 11월엔 한국농어촌공사와 부지 매입을 위한 위수탁협약까지 체결했고 국방부가 최근에야 진천군에 업무협조요청 공문을 보낸데 이어 오는 3월 주민설명회를 갖는다고 하니 이 문제는 이미 화살을 떠난지 오래된 것같다. 진천군은 올 초 국방부로부터 뒤늦게 협조공문을 받고서도 사안을 쉬쉬해 왔다.

이 소식에 우선 기분나쁜 것은 국방부가 3년전인 2014년부터 진천군 내 부지를 조사하고 2015년엔 진천읍 문봉리와 백곡면 사송리 일대를 최종 후보지로 결정했는가 하면, 지난해 여름에는 한미 합동 실사까지 벌였는데도 충북은 깜깜이로 몰랐다는 사실이다. 사안의 성격상 추진과정의 기밀유지 필요성을 백번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결정된 마당에도 저들은 꽁꽁 숨겨온 것이다.

충북을 무시하지 않고선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더군다나 그간의 모든 과정을 챙겼을 국방장관이 충북출신 아닌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버금가는 한민구 국정농단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가정책 추진에 있어 전형적인 뒷거래와 은폐의 관행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가장 살기좋다는 의미의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상징되는 ‘진천’은 희한하게도 전쟁과 힘의 논리로 무장해야 설득력을 얻는 군(軍)과 관련된 역사와 일화가 많다. 우선 진천은 3국통일의 영웅 김유신이 탄생한 유허지로 진천군은 오래전부터 김유신을 특화해 각종 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한 이번 미군 산악훈련장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당장 떠 올린 것은 왜 하필 미군부대냐는, 과거 일그러진 추억에 대한 기억이다.

지금은 중부고속도로와 청주~진천간 자동차 전용도로 때문에 회자가 덜 되지만 지난날 청주에서 진천 소재지인 진천읍을 가기 위해선 필히 지나야 하는 곳이 이른바 ‘잣고개’다. 이 잣고개를 넘으면서 왼쪽으로 보이는 게 문안산(416m)인데 바로 이 산 정상에 1977년까지 레이더 기지를 겸비한 미군 방공포대가 있었다. 이 잣고개 길을 가운데로 서쪽 문안산과 동쪽 봉화산(412m)이 마주하고 있어 주말 산행인들이 즐겨찾지만 아직도 당시 미군부대의 건축물 잔해에다 군데군데 군사지역을 알리는 경고안내판이 눈에 띄어 찾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그 때의 미군부대 규모에 대해선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으나 당시 미군 주둔에 반드시 뒤따르는 이른바 ‘양공주 촌’이 이곳 문안산 자락인 진천읍 사석리 등에도 여지없이 형성되어 부대가 한국군에 인수될 때까지 운영됐다는 것이다. 때문에 70년대에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역 언론사 기자들은 이 곳에 대한 취재와 경험(?)을 마치 무용담처럼 입에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잣고개를 중심으로 하는 문안산과 봉화산 지역은 6.25 때 국군과 이 지역의 학생 등 민간인이 합동으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상대로 약 5일동안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도내 대표적인 격전지였다. 지금도 잣고개 마루에 고즈넉하게 버티고 서 있는 전적비가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잘 말해주고도 남는다.

진천군에서 가장 높아 진산(鎭山)이 되고 있는 만뢰산(612m)은 10년 전, 산 정상의 군용 헬기장 문제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헬기장을 진천군 진산의 정수리에 설치한 것도 헷갈렸지만 군용기 이착륙의 편의를 위해 인근 공군부대가 아예 헬기장 바닥을 철판으로 덮는 바람에 논란이 컸다. 주민 몰래 강철 패드를 깔았다가 등산객들로부터 “진천의 정기를 말살시키고 있다”는 신고와 민원을 받고서야 철거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철판이 철거된 이후 진천군은 모든 행정평가의 지표에서 두드러진 급성장을 기록중이다.

분명한 것은 미군 산악훈련장은 이처럼 진천을 대표하는 여러 산들과 연계해서 따져봐도 타당성을 인정받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진천읍을 중심으로 그 사위엔 결코 높지 않으면서도 지역의 역사와 함께 해온 유서깊은 산들이 많다. 청주권과 인근 주민들이 수시로 올라다니며 건강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아주 살가운 코스들이다. 대충만 꼽아봐도 앞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봉황산(427m) 장군산(436m) 무제산(574m) 갈미봉(568) 태령산(451m) 등 수두룩하다.

특히 미군 산악훈련장 부지는 진천의 최고봉인 만뢰산으로부터 갈미봉-태령산-문안산-잣고개-봉화산으로 이어지는, 마치 진천군의 중앙을 동서(東西)로 병풍처럼 감싸는 산세를 끼는 형국이어서 이를 훼손할 경우 지역의 정체성 논란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만뢰산(萬賴山)이라는 이름은 ‘나라에 무슨 변고가 생기면 병정이건 백성이건 만인이 다같이 피신하고 의지할 수 있는 장소’라는 뜻의 설화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져 유사시엔 적으로부터 제1의 타깃이 되는 미군부대는 이런 풍수에도 정면으로 반한다.

사실 생거진천이라는 말도 이들 산을 배경으로 하여 그 사방에 수량이 풍부한 미호천과 초평저수지, 백곡저수지 등을 둘러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 때문에 가능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미군 산악훈련장 설치는 이 것의 한 가운데를 깔아뭉개는 꼴이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한민구 국방장관이다. 꼭 충북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적어도 이런 국가적 문제에 대해선 무장(武將) 출신답게 좀 더 당당하게 대처하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14년, 역시 충북을 대표하던 신현돈 장군의 갑작스런 전역 사태 때에도 많은 지역민들을 실망시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음주추태가 빌미가 돼 1군사령관이던 4성 장군이 하루아침에 옷을 벗게 된 사건인데, 사안이 너무 왜곡되어 부풀려졌는데도 당시 한 장관은 동향이자 학교동문관계인 신 장군을 대변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그를 일거에 내침으로써 지역사회의 공분을 샀다. 신현돈은 현역시절 천생 군인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우리나라 군을 대표하는 무장으로 불렸다.

최근 국방전문가인 정의당 김종대 국회의원은 인터넷신문 충북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사건에 대해 “(신현돈은)해임될 사안이 아니었다. 그런데 대통령 외유기간에 벌어졌다는 이유로 괘씸죄로 가중 징계됐다. 한 장관이 동문이라는 이유로 봐주기 논란이 일까봐 오히려 회피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 때의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진천 미군 산악훈련장의 운명도 한민구의 손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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