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처 확보 못한 다품목 재배 너무 힘들어…깻잎따는 이유 있었네

<정순영의 일하며 생각하며>
정순영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지난해 생애 첫 농사로 각종 허브를 심고 가꿨다. 990㎡(약 300평)남짓의 밭에 바질, 레몬밤, 타임 등 예닐곱 가지 허브를 길러보자 마음먹은 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은 우리 부부 둘 다 워낙 초보 농사꾼이라 웬만한 환경에서도 그럭저럭 자라나는 작목이 좋겠다 여겼는데 그런 점에서 허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난해 우리집 바질밭 풍경. 엄청난 생산량으로 나를 기겁하게 했다.

길러보면 알겠지만 허브는 날이 가물어도 비교적 잘 견디고 대부분의 허브 식물이 ‘방충’ 효능을 지니고 있어 따로 약을 치지 않아도 벌레 걱정이 없다. 기르기 쉬워서 허브를 선택한 것과 함께,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분간은 쌀이며 채소 같은 식자재들은 그냥 마을 어르신들께 구입해 먹거나 얻어먹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책 없이 시작한 허브 농사가 가져다 준 또 한 가지 덤은, 마을 어르신들의 칭찬. 마을 진입로에 자리 잡은 우리집 주변으로 허브식물을 잔뜩 심어놓은 덕에 마을에 들어서면 예쁜 꽃도 볼 수 있고 전에 없던 좋은 향기가 난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말씀이었다. 하지만 허브농사가 가져다준 향긋한 측면은 딱 여기까지.

바질농사 통해 깨달은 농촌 현실

농사로 먹고 살 것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우리 부부의 허브 농사는 정말 애들 장난과 다름 아닌 것이었다. 농가 입장에선 농사란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인 것인데 우리의 허브 농사는 소득 창출이란 가장 중요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허브로 돈을 좀 벌어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바질’이었는데, 평소 수입산 바질가루를 사서 요리에 사용하곤 했기 때문에 우리집 바질 잎을 수확해 잘 말려서 분쇄 포장·판매하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수확 단계부터 현실은 상상과 다르게 펼쳐졌다. 우선 바질 잎은 너무도 왕성한 생산량을 자랑했다. 여름 수확 철, 한바탕 잎을 따고 돌아서면 또 풍성하게 자라있는 바질을 바라보며 약간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매력적 향을 가진 바질은 서양음식에 다양하게 쓰이지만 우리 밥상에서 애용하기란 영 어려운 작물이다.

수확을 하고 나서도 문제였다. 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기르긴 했지만 그래도 세척과정이 필요했고 세척이 끝난 바질 잎을 건조하기 위해선 건조기가 필요했다. 처음엔 집에 있는 가정용 식품건조기로 해결해보려 했으나 도저히 그 양이 감당이 안 되어 마을 이장님 댁에 있는 대형 건조기를 빌리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이장님 댁 건조기로 12시간 정도 건조한 바질 잎을 집에 있는 믹서기로 분쇄하고 작은 병에 나누어 담은 뒤 ‘100% 집에서 만든 바질가루’라고 쓴 제품 라벨까지 그럴싸하게 붙여 놓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 도대체 이 바질가루를 어디서 어떻게 팔아야 한다는 말인가! 처음 밭을 일구고 허브 심는 것을 지켜본 마을 어르신들도 하나같이 건네신 걱정이 ‘그런데 그거 길러서 어디 팔 데는 있어?’라는 것이었다. 농작물을 힘들게 길러놓아도 제 때 제 값을 받고 팔지 못하면 차라리 밭을 갈아엎는 것만 못할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아시기에 하시는 걱정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동네 가게나 마트 납품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블로그 같은 온라인을 통한 판매도 쉽지 않았다. 일단은 먹을거리 제조·판매에 필요한 각종 허가를 얻지 않은 것이 문제였고 농산물 온라인 판매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하루 일과의 많은 시간을 거기에 쏟아부어야하는데 우리 부부 둘 다 그런데 재주도 의지도 별로 없음을 알게 됐다. 직거래도 쉽지 않았다. 당장 내 주변만 봐도 ‘바질가루’를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후추 가루처럼, 한 번 사놓으면 1년도 먹을 수 있는 바질가루이기에 주변 지인들에게 의리를 강요하며 몇 병씩 팔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리집 바질가루는 어떻게 됐을까? 이런 우리를 안쓰럽게 여긴 마을 분들이 또 한 번 구원 투수로 나서주셨다. 그나마 바질 씨앗 값은 건질 수 있도록 우리 마을이 운영하는 마을기업을 통해 바질가루를 팔아주셨다. 그리고 나는 한 달에 한 번 옥천읍에서 열린 옥천푸드 직거래장터에 바질가루를 들고 나가 판매를 하였고 지금도 알음알이로 바질가루를 찾는 분이 있으면 판매를 하고 있다.
 

이렇게 정성들여 소포장까지 했지만 판매는 정말 막막했던 바질농사.

‘꿈같은’ 재배 품목 다양화

바질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기자 시절, 내가 얼마나 알량한 경험과 지식으로 주제 넘는 기사를 써왔는지 깨달았다. 농업 관련 기사를 쓰며, 우리 동네를 포함한 대다수 농촌지역이 특정 작목 재배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고 그로 인한 홍수출하와 가격 하락을 반복하고 있다고, 재배 품목을 다양화하는 방안이 시급하다는 기사를 자주 쓰곤 했다.

하지만 판매처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농가가 재배 품목을 다양화하는 것이 얼마나 큰 모험인지를 절감했다. 농가 입장에선 농협이건 어디에서건 농사 지어놓은 것을 몽땅 가져다 팔아만 준다면, 그것이 헐값일지언정 생산비라도 건졌으니 그걸로 됐다 여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요즘 우리 면에선 깻잎 농사가 엄청 인기인데, 깻잎은 연중 쉬는 날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일이 손으로 잎을 따야하는 그야말로 노동집약적 작목 중 하나이다. 그나마도 나이 드신 분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고 우리 면의 비교적 젊은 농가 대부분이 깻잎 농사를 짓고 있다.

그래서 면에 무슨 행사가 있어 나가봐도 젊은 사람들 보기가 힘들다. 쉴 새 없이 깻잎을 따야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고되게 깻잎 농사를 지어야하나 생각했지만 농사로 돈을 벌어 아이도 키우고 삶을 건사해야 하는 농가 입장에선 일단 수확만 해놓으면 농산물공판장을 통해 전량 판매되고 매일 현금을 쥘 수 있는 깻잎은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작목인 것이다.

이런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한번만 더 철없는 도전을 해보자 싶어 올해도 우리집 밭엔 마을 어르신들의 걱정을 살 만한 이런저런 작물들이 심겨져 있다. 바질과 같은 사태를 또 한 번 겪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팔지 부지런히 연구해야 하는데 아직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그래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지난해보다는 조금 더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인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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