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헌 환 (서원대 법학과 교수 )

얼마 전, 이런 저런 정치적 사건과 정쟁으로 어수선한 우리 사회에 조용하면서도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한 일들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리는 하나의 보도가 있었다. 바로 2008년부터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하겠다는 사법개혁위원회의 결정이었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법학교육제도는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유지되어 왔는데, 이제 법학교육제도를 바꾸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무어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싶겠지만, 법학교육제도의 개혁이 사법개혁이라는 큰 테두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면, 이 일이 우리 사회의 근간을 바꾸어가는 중요한 작업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1987년 6·10민주화항쟁 이후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민주화가 진행되어 정치분야 이외에 우리 국민의 생활 구석구석에 민주화의 정신이 구현되도록 하는 노력이 이어져 왔다. 아니 우리 국민의 생활 하나하나가 민주화되지 않고는 결코 국가권력의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니, 그동안 우리 국민을 억압하거나 국민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었던 제도들을 하나하나 뜯어 고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말할 필요가 없겠다.

사법개혁작업은 문민정부 이래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강조되어 왔고, 그동안 세세한 부분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하였지만, 정작 큰 틀에서의 개혁은 언제나 뒤로 미루어지고 있었다. 그 큰 틀을 한 마디로 말하면, 권력의 사법이 아닌, 국민의 사법을 구현하는 것이다. 2003년10월28일에 출범한 사법개혁위원회는 약 1년 동안 대법원의 기능과 구성의 문제, 법조일원화와 법관임용방식의 개선 문제, 법조인 양성 및 선발제도의 문제, 국민의 사법참여의 문제, 사법서비스 및 형사사법제도의 개선 문제 등, 현재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세밀히 검토하고 실현가능한 제도를 이끌어내어 현실적으로 제도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법원의 기능과 구성방법에 있어서는 고등법원 상고부설치 문제, 대법원의 이원적 구성 문제, 대법관증원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고, 법조일원화와 법관임용방식의 개선문제에서는 법원의 관료화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 법관평가제도 등이 논의되고 있으며, 법조인양성 및 선발제도에 대해서는 법학전문대학원제도의 도입이 확정되고, 사법시험제도의 개선을 추구하고 있으며, 국민의 사법참여의 문제에 대해서는 배심제와 참심제의 도입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특히 배심제 및 참심제의 도입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사법개혁위원회가 행한 8월26일의 모의재판은 우리 국민들의 규범수준과 자질을 보여주는 좋은 시도였다. 사법서비스 및 형사사법제도의 개선은 기본과제로서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형사사법제도를 정비하고 법조인의 책무와 위상을 재정립하며, 피의자, 피고인의 권익보호, 재정신청제도의 확대, 법률구조제도의 개선, 공적 변호사제도 신설 등 국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사법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제도를 모색하고 있다.

이 모든 개혁작업의 기초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법이 국민으로부터 유리되어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식민시대에 자격을 취득한 법조인이 우리나라의 재조법조에서 마지막으로 퇴장한 시기가 1981년이었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 사법이 얼마나 식민시대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징표의 하나이다. 더욱이 독재권력들이 식민시대의 통치권력과 다르지 않는 억압적 지배로 국민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음에도 상당수 법조인들은 그 독재권력에 기생하여 자신의 안위만을 돌보기에 급급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이러한 과거의 경험들은 사법제도를 국민을 위한 사법이기보다는 권력을 위한 사법, 사적 이익을 위한 사법으로 생각할 뿐, 국민전체의 공익이나 국민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도구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법률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자연히 재조, 재야 모두의 사법을 불신하고 멀리 하게 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법제도의 개혁은 이러한 국민의 사법불신을 배제하고 진정한 국민의 사법으로 거듭 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제 사법제도의 주체는 국민이다. 사법개혁의 출발점은 사법의 국민불신부터 척결하여 우리 국민의 규범적 우수성을 찾아내고 고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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