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노 칼럼 ‘吐’/ 충주·음성담당 부장

충청리뷰 윤호노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이달 초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달 귀국 후 잠깐의 대선 행보를 보였지만 반풍(潘風)은 태풍이 되지 못하고 빠르게 소멸했다.

반 전 총장의 이력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흥미롭게도 흘린 땀 못지않게 고비마다 절묘하게 행운이 뒤따랐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첫 근무지 인도에서 평생의 멘토인 노신영 전 총리를 만났다. 그는 당시 인도 뉴델리 노신영 총영사의 눈에 들었고 노 총영사가 외무장관, 안기부장, 국무총리로 잘 나가는 동안 그 역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2001년 4월 한·러 정상회담에서 불거진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논란에 책임을 지고 차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는 노무현 정부의 외교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다시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취임 5개월 만에 이라크에서 김선일 씨 피살사건이 터졌다. 주무장관을 해임하라는 목소리가 국회를 들썩였다. 한나라당이 앞장섰고, 심지어 여당 의원들까지 가세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며 인책론을 일축했다. 노 대통령이 그때 반 장관을 경질했다면 그는 유엔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반기문은 2006년 2월 14일 유엔 사무총장직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던가, 그에게 또 한 차례의 위기가 찾아왔다. 2006년 4월 동원호 피랍자 석방교섭이 늦어지면서 정부의 소극적인 협상태도와 함께 반 장관 책임론이 불거진 것이다. 이때는 유엔 사무총장직 출마 선언 직후라 더욱 곤란했다. 장관이 선거운동에 한눈을 파느라 업무는 뒷전이냐면서 경질 요구가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을 장식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노 대통령에게 “일단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다음, 대통령 특보 명함을 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떠냐”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노 대통령은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경질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에서 유엔사무총장이 나온다는 것은 멋진 일 아닌가. 욕은 내가 먹겠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반기문이 장관직을 그대로 유지하며 외교활동의 연장선에서 각국 외교장관을 상대할 수 있도록 잘 정리해줬다.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였다. 노 대통령의 숨은 역할은 반기문의 유엔 총장 당선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된 반기문은 2008년 5월 노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봉하에서는 정중하게 추모 영상메시지 또는 서면메시지를 부탁했으나 끝내 이를 받지 못했다. 같은 해 7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지만 노 대통령의 묘소 참배는 하지 않았다. 자신을 있게 해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급기야 2011년 8월 당시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반 총장을 비판하고 나섰고, 이 일이 있은 지 3개월 후인 12월 1일 반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3년 반 만에 봉하마을을 방문했다. 너무 늦은 방문과 참배였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의 살아 있는 권력에 미운 털이 박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국민들 눈에 비쳐졌다. 또 귀국 후 어설픈 서민행보와 명확한 비전제시를 못한 것이 그에게 치명타가 됐다. 그런 이미지는 한때 대선 후보 영입 1순위와 지지율 1위를 싸늘한 반응으로 바꿔버렸다.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 그가 다시 존경받는 이미지로 돌아오려면 정파를 떠나 헌신하는 모습일 것이다. 반풍(潘風)이 온풍(溫風)이 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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