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김문수는 참 쉽게도 변신한다. 그는 경기도지사를 정점으로 하는 화려한 정치이력이 무색할 정도로 언론에 등장만 했다하면 사람들로부터 욕을 많이 듣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여기엔 “꼭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극도의 측은지심이 같이 한다.

김문수는 탄핵정국 초기만 하더라도 비주류측을 대리해 당 비상시국회의 공동대표를 맡아 박근혜 탄핵을 이끌었다. 본인은 탄핵을 주도한 게 아니라 오히려 여론몰이식 탄핵을 경계했다고 강변하지만 그 때만 해도 박근혜와 대립각을 세운 건 분명하다.

그가 이번엔 박근혜 지키기의 수호천사로 나섰다. 지난 주말에는 탄핵반대 집회의 무대에까지 올라 박근혜를 향한 거침없는 연정(戀情)을 쏟아냈다. ‘가장 청렴한 대통령’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하나 나지 않는 대통령’ 등 등 그의 발언을 들으면 청와대 관저에 유폐된 박 대통령이 왈칵 눈물을 쏟아내도 부족할 판이다.

그런데 그의 과거 행적을 조금만 들춰봐도 이같은 용비어천가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는 금방 드러난다. 박근혜 당 대표시절인 2004년, 김문수가 박근혜의 대권행보에 어깃장을 놓자 곧바로 박 대표로부터 강한 반발이 들이닥쳤고 이 때 김문수는 “21세기 유신선포” 라며 독기로 맞선다.

2012년엔 이런 발언도 있었다. "결혼을 안 하는 것은 위선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살면서 스님이나 수사님처럼 금욕적 삶의 윤리를 못 지킬 것같아 내면의 정직함을 위해 결혼했다." 그해 6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처녀 박근혜’를 향한 다분히 의도된 도발이었고 물론 박근혜 폄훼가 목적이었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세월호 7시간 행적과 관련해 무슨 주사투여니 성형시술이니 하며 여전히 특검수사의 중심에 서 있는 박 대통령의 현 처지를 연상시켜 참으로 묘한 생각을 갖게 한다.

한 때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대부쯤으로 추앙받으며 그의 국회 입문 또한 이에 힘입은 바 절대적인데도 1996년 노동법 날치기에 거수기 역할을 한 것 또한 김문수로선 평생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로 남아 있다. 그에게 붙어다니는 ‘배신자’라는 딱지는 바로 이때 여론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다.

김문수는 이명박 정권에서 세종시를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던 인물중에 한 사람이다. 경기도지사로서 세종시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고민해야 할 처지임을 이해하더라도 당시 그의 말과 행동은 충청인들에게 너무 안하무인이었다. ‘세종시는 노무현 말뚝 중 제일 잘못된 말뚝’이라던 김문수의 신념은 그러나 그가 대통령을 꿈꾸던 2012년 충청권의 표심을 구걸하는 자리에서 미련없이 폐기처분된다.

그해 세종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법으로 통과된 상황에서 반대는 무의미하다. 지금 세종시가 이렇게 웅장하게 잘 건설되고 있기 때문에 지역과 나라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입장을 표변시킨 것이다. 이 때도 사람들은 “법으로 통과된 상황이라 반대가 무의미하다면 국법으로 세종시 설치가 결정된 아예 처음부터 입다물고 있어야 했다”고 비아냥 댔다.

누구 하나 특출나지 않고 그래서 도토리 키재기라는 현재 여권의 대권후보 명단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김문수를 이렇듯 길게 거론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통령이 끝간데없이 망가지고 국민들이 둘로 이간질되며 결국 국가 자체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작금의 난국은 다름아닌 권력의 도처에 숨어 악을 선으로 위장하며 비굴하게 정치의 연명(延命)을 이어가는 이들 변절자로 인해 비롯된다는 것이고, 이는 끝내 자신은 물론이고 그 주군까지도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제 아무리 헌정농단이라지만 그래도 선진국 문턱의 민주국가 대한민국이기에 마지막까지 기대하고 싶은 대통령의 결단, 지금처럼 나라가 촛불과 태극기로 두쪽나는 상황이라면 마땅히 대통령으로선 국가의 혼란을 최소화할 구국의 선택, ‘용퇴’할 것을 학수고대 하고 있건만 이들 변절자들이 대통령의 마음과 눈까지 속이고 있으니 이들이 바로 국민에 대한 배신자가 아니겠는가. 광화문 촛불이 아니라 국민 5000만 명이 시위를 해도 꿈쩍하지 않을 것이라는 JP의 예언이 두렵기 전에 탄핵정국이 길어질 수록 박근혜한테 이를 부추기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는 사실이 더 소름끼치는 것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한 일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은 국가권력을 사유화하며 국민들을 딱 반으로 갈라놓은 것, 그러고선 헌재 심판과 특검 수사 앞에서도 끝까지 책임지지 않으려고 법과 상식을 능멸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그동안 소중하게 지켜왔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대책없이 키웠다는, 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하게 되는 것은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이다.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해외로 도망가고 감옥으로 끌려가는가 하면, 서럽게 자살할 수 밖에 없는 그 악순환이 또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다. 탄핵이 되든 기각이 되든 헌재 결정이 떨어지는 즉시 우리앞에 벌어질 일은 자명하다. 또 다른 동족상잔, 한쪽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 또 죽여야 하는 편가르기의 살기가 온 나라에 몰아칠 것이다.

다급해진 정당들과 대권후보들이 헌재결정에 대한 승복을 마지못해 얘기하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100% 확신하건대 탄핵 찬반의 극한 대립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책임질 줄 모르는 못난 대통령이 그렇게 만들었고 교활하고 야비한 정치인들이 이를 부채질했다. 탄핵 여부와 상관없이 박근혜 대통령은 어차피 불행해진다. 이는 업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권교체에 따른 보복 정치의 악순환이 치유될 뻔한 때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임 김영삼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지켜준 그 시기다. 김대중 역시 정권을 잡자마자 IMF 구제금융을 불러들여 나라를 파산케 한 숙적 김영삼을 꼭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력에 시달렸지만 그는 노련한 정치술로 이를 피해 갔다.

하지만 이는 이명박 정권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전임 노무현에게 온갖 수모를 가하다가 끝내 바위에서 몸을 던지게 했고 그 주변인들은 억지로 꿰어져 줄줄이 사법처리됐다. 여기에 1등공신은 단연 우병우였다.

그런데 이명박은 누구인가. 선관위 디도스공격으로 국기를 문란시키고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과 자원외교로 나라살림을 거덜내더니 급기야 말년에는 국정원 등 국가기관을 대선에 개입시켜 헌정까지 파괴한 주범 아닌가.

권력에 당한 사람들의 한(恨)은 말 그대로 처연하다. 그러기에 ‘당한 만큼 갚아 주겠다', '받은 대로 돌려 주겠다'는 응징의 심리는 자연스럽게 키워진다. 이번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이같은 보복 정치의 재연(再演)이고, 불행하게도 박 대통령의 개념없는 버티기로 이 것의 현실화 조짐은 점차 커지고 있다.

김문수의 배신과 변절을 결코 쉽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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