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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을 못 봐야 멀리 보는 게지”질펀한 충청도 사투리의 향연, 남덕현의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나경 꿈꾸는책방 점장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지음.
빨간소금 펴냄.

판단 착오다. 머리 복잡한 책을 읽다가 숨이 턱하고 막혀 오기에 숨 좀 편히 쉬고자 집어 든 책이었다. 띠지에 “웃픈”이라고 쓰여 있었으나 그래도 ‘-픈’보다는 ‘웃-’에 초점이 맞춰있겠지 싶어 고른 것이다.

역시나 첫 장부터 심하게 재밌다. 장화와 홍련이 중 누가 나쁜지를 가리겠다며 콩쥐-팥쥐는 물론 이순신 장군과 유관순 열사까지 불러내는 충청도 어르신들. ‘깐눔의 노인회장’ 자리를 놓고 다툼 아닌 다툼을 벌이는 동네 맞수의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한데 복병은 다른 데 있었다. 두 번째 꼭지부터는 책장이 잘 넘어가질 않는다. 사전을 옆에 두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충청도 사투리가 질펀하게 범벅돼 있어서다. 소리내어 읽어보려 해도 억양을 모르니 읽을 수도 없다. 사투리가 이리도 어려운 거였던가.

차라리 처음부터 그랬다면 아예 책을 덮어버렸을 텐데, 첫 번째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기에 책을 덮을 수도 없다. 다행인 건 두 번째 이야기를 읽어내자 사투리를 해석하는 데도 읽어내는 데도 속도가 붙었다. 대화인지 만담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유려하게 쏟아내는 충청도 노인들의 입담에 빠져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개그맨 중에 충청도 출신이 많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사투리 때문에 읽어야 하나 마나를 고민하게 한 책은 충청도 노인들의 웃픈 이야기로 범벅된 <한 치 앞도 모르면서>다. 4년 전 <충청도의 힘/양철북>으로 많은 이들을 웃게 한 남덕현 작가의 새 책으로, 전작의 속편이라 해도 될 터다.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살이를 거쳐 충남 보령에서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저자는 주변에서 만나는 동네 어르신들의 일상을 그들의 언어를 이용해 날것으로 풀어냈다. 읽다보면 실제 이야기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분간이 안 된다. 그만큼 이야기가 살아있다.

 

웃픈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통찰과 혜안

 

질펀한 사투리 때문에 노인들의 이야기가 우스개로 들리지만 그 안에는 학교와 책이 아닌 장터와 삶에서 체득한 통찰과 혜안이 엿보인다. “농사철이라기에는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맥없이 방구들을 지고 있자니 마음이 처져서 못쓰겠는” 모호한 4월에 마침 선거가 코앞이다. 문화센터에서 열린 종편 출신 정치평론가의 강연이 어땠는지로 시작한 이야기는 땅-소작-직불금을 밟고 창조경제로 뛰어올라 결국 마지막에는 정치하는 것들이 국민들한테만 독박을 씌운다는 분노로 내려온다.

“더위에 놀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탄식할” 폭염이 이어지는 한여름, 육개장이 나오자마자 서늘하게 식어버릴 정도로 냉방이 강한 장례식장에서는 기름 걱정을 지나 경제 걱정으로 넘어간다. 그러고는 이내 “우덜 같은 출신덜은 지름으루 시상이 돌어가나 물루 돌어가나, 자동차가 댕기나 말이 댕기나 장 두 발루다 견디구 사는 강골 팔자지 뭐 타구 댕기믄서 호사나 누리는 약골 팔자는 못 되니께!”라며 이내 한탄을 쏟아낸다. 가방끈이 짧아도 살면서 터득한 슬픈 진실이다.

우스개와 분노, 한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룰 수 없었기에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상대의 가슴에 비수가 될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또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는 능청이란. 징한 한국현대사를 겪어내며 살아온 진짜 강골이기에 그런 비수 따위는 얼마든지 웃음으로 승화시켜낼 수 있는 것일까? 하긴 이 땅의 노인들은 이미 도깨비 가슴에 꽂힌 것보다 더 커다란 검 하나씩 다들 안고 살고 있을 터.

표제작인 〈한 치 앞도 모르면서〉에서는 다른 이의 한 치 앞을 훤하게 내다보지만 정작 자신의 한 치 앞은 전혀 보지 못한 만신(무녀)의 이야기를 통해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야 말로 사람 사는 이치임을 이야기한다. 좌절과 비통함이 있어도 한 치 앞에 어떤 희망이 올지 몰라 살아내는 것이고, 룰루랄라 즐거울지라도 한 치 앞에 어떤 고난이 닥칠지 몰라 겸손하게 살아야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고보니 태어나기를 ‘중간이 읎이’ 태어났다던 저자는, 소설과 산문의 중간쯤인 이 책을 내놓으며 중간이 있는 이가 되어버렸다.

 

충청리뷰  043si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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