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고 권태응 선생, 일본 수감자료 찾기 난항

   
충주 출신의 동시작가 고(故) 권태응 선생의 독립유공자 신청과 관련 국가적 차원에서 해외 독립운동 사료발굴 및 자료수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제기됐다. 열린우리당 오제세의원(청주 흥덕갑)은 7일 국가보훈처 국정감사에서 “역사정기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친일 진상규명 못지않게 묻혀진 항일 독립운동의 복원이 절실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오의원은 일제당시 고 권태응 선생의 일본 수형생활 기록등 자료수집에 어려움을 겪자 국가기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

고 권태응 선생의 독립유공자 신청작업은 충북작가회의 도종환 시인의 주도로 일본 현지 지인을 통해 자료수집에 나서고 있다. 충북작가회의는 지난 97년부터 해마다 권태응 문학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충주 문인협회도 백일장을 열고 있다. 새싹회는 지난 68년 전국에서 6명의 동시작가를 선정해 노래비를 건립하면서 권태응 선생의 ‘감자꽃’ 노래비를 충주 탄금대에 세우기도 했다. 고인은 일제 식민시대와 분단의 아픔을 겪은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과 통일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작품을 다수 발표했다.

이같은 작품배경은 고인의 항일의식에서 비롯됐고 학창시절에는 국내와 일본에서 수감생활을 겪기도 했다. 충주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에 입학한 고인은 노골적인 친일행각을 보여온 동기생이 졸업앨범을 제작하면서 일본의 상징꽃인 국화를 맨 앞장에 넣자 졸업식날 그를 화학실험실로 불러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몰매를 가했다는 것. 이 사건은 당시 경성일보에 기사화됐고 권태응 선생을 비롯한 8명의 졸업생이 종로서에 연행돼 15일동안 구금되기도 했다.

또한 37년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학과에 입학한 고인은 조선인 유학생 독서회를 만들어 민족문제를 고민했다. 이같은 움직임이 일경에 포착돼 독서회 친구들과 함께 도쿄 노다경찰서에 연행돼 3~4개월씩 구금됐다. 39년에는 스가모 형무소에 수감돼 1년간 옥고를 치렀고 이때 폐병이 걸려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44년 귀국후 적십자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충주로 내려와 야학을 개설하고 연극공연을 하는등 농촌계몽 활동에 전념했다. 51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속에 병약했던 고인은 제대로 약도 써보지 못한채 33살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지난 8월부터 일본 사료수집에 나선 도종환 시인은 “충주보훈지청에서 상담한 결과 증빙자료를 가족들이 제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유자녀 2명은 미국으로 이민간 상태라서 일본에 있는 지인들을 통해 스가모형무소 관련 자료를 찾고 있다. 하지만 2차대전 종전후 일본 A급 전범이 수감처형됐다는 이유로 교도소 자체를 해체 분산시키는 바람에 관련 자료도 산산히 흩어진 상태였다. 와세다대 법학부 도서관과 당시 공안담당이었던 특별고등경찰 관계자료를 모두 찾아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독립운동 유가족들이 해외자료를 수집한다는 것은 현실성없는 공허한 주장이고, 국가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신청을 받아 해외사료 수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오제세의원은 국가보훈처 국정감사에서 “보훈처 사료수집 담당직원이 3명에 불과하고 외부 사료수집위원 20명도 월 20만원의 활동비만 지원받아 사실상 유공신청자 개인 차원에서 사료수집을 해야하는 처지다. 권태응 선생처럼 외국에서 필요한 자료를 입수해야 하는 경우 개인이 처리하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요건이 많다. 보훈처가 전문가를 통해 해외 사료 발굴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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