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박아롱 변호사

▲ 박아롱 변호사

아이가 두 돌에 접어들 즈음 야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자, 엄마를 기다리다 늦은 저녁식사를 마친 아이가 내게 “엄마 나가”라고 하며 역정을 낸 일이 있다. 월령에 비해 말이 빠른 아이는 아니었던 지라 그 말은 내가 거의 처음 듣다시피 한 아이의 ‘두 단어 문장’이자, 언어의 형태로 이루어진 첫 항의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이를 출산한 지 두 달 만에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다시 출근을 했고, 이제 막 돌이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으며, 직접 만든 음식을 아이에게 먹이는 횟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불량엄마였다. 어떻게든 아이의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애썼어야 하지만 나는 그 때 잠깐 충격을 받아 위기감을 느낀 외에 막상 눈에 보이는 노력을 하지 못했고, 아이는 지금 ‘예쁜 사람 순위’에서 엄마를 절대 1등을 시켜주지 않는 방법으로 내게 복수(?)하고 있다.

다행히 엄마 대신 주양육자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고, 훌륭한 어린이집을 만나게 되어 아이가 사랑을 고파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언제나 아이에 대하여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아이도 항상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일하는 엄마가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므로 당당해지려고 노력하라고 하는데,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고 아이를 챙겨주지 못해 드는 자연스러운 미안함을 어찌하겠는가. 뭔가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나는 아마도 따끔히 혼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주춤하고, 뜬금없이 용돈이나 선물 공세를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뿌리 깊은 미안함을 감추면서 아이를 키워갈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면서 예비후보들이 이런 저런 정책 공약을 내놓는 가운데, 육아와 관련된 공약이 선순위로 꼽히고 있다. 초등학생 미만의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 임금 감소 없이 근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도 있고,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고 칼퇴근을 보장하자는 이도 있으며, 대체인력을 확충하고 인사제도를 정비해 아빠의 육아휴직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이도 있다.

육아의 어려움과 이로 인한 출산율 저하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고, 그동안 많은 정책이 시행되어 왔지만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없었다. 인사고과에 대한 두려움이나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등 실질적인 이유 때문에 이번에 그들이 내놓은 정책이 정말로 많은 근로자들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지 미지수인 것도 사실이다. 많은 누리꾼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금 당장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 등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가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이번 공약이 반가운 것은 ‘국가가 저렴하게 또는 무상으로 아이를 대신 봐줄 테니 너는 일을 해라’가 아니라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늘려주겠다’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가정 안과 밖에서 역할을 다 해내기 위해서는 부모가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을 어느 정도 국가나 사회가 대신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정 안과 밖에서 해야 할 일의 양과 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함으로써 양쪽에서의 역할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본질적인 해결책이지 않겠는가.

고질적인 난제가 한 방에 쉽게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일 만큼이나 가정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 정책들이 하나 둘 펼쳐져 나간다면, 네 살 먹은 우리 아이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될 때쯤이면 나도 ‘예쁜 사람 순위’에서 1등을 하는 당당한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새해 들어 속속 나오고 있는 예비후보들의 반가운 공약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주리라 기대하면서 오늘도 고단하고 미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워킹맘들에게 ‘함께 희망을 품어보자’는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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