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충북인들이라고 해서 뭐 특별히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원종과 반기문이라는, 앞으로도 결코 쉽게 나타나지 않을 지역 출신의 출중한 인물들이 너무 황망하게 연이어 무대 뒤로 사라진 것에 대한 상실감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이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애초부터 둘은 권력의 손짓에 더 이상 현혹되지 말았어야 했다. 청백리의 상징이었던 이원종이 졸지에 국민들을 배신한 청와대에 들어간 것도 그렇고 반기문이 세계대통령을 10년이나 하고서도 욕심을 부린 것 또한 일반 도민들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기에 둘의 낙마는 개인 차원의 해프닝 쯤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속은 더 편해진다. 만약 최순실 국정농단이 조금이라도 늦게 세상에 불거지고 이원종 전 비서실장의 사표 역시 코너에 몰린 대통령의 여론반전 용으로 즉각 수리되지 않았다면..., 할 말은 아니지만 지금 쯤엔 참고인 자격으로라도 특검에 소환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반기문 효과는 분명 있다

반기문 또한 지지도가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계속 완주를 고집했을 경우 야당 소속의 이시종 지사를 비롯한 도내 정치 명망가들의 처신은 극도로 혼란스러웠을 게 뻔하다. “공산당이 아니면 끝까지 따르겠다”고 선수를 치며 반기문 대망론에 올라타 정치적 원모(遠謀)를 꾀하려다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경대수 박덕흠 이종배 국회의원에 비하면 이원종, 이시종은 그동안 누렸던 관운만큼 참 복도 많다. 천운(天運)이라는 주변의 덕담은 그래서 나온다.

언론에서는 반기문의 부정적 후폭풍을 연일 거론하지만 냉정하게 진단해 보면 이게 전부는 아니다. 외려 그의 ‘3주 천하’가 지금의 한국 정치에 기여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두가지다. 하나는 그러잖아도 무분별한 정치담론에 매몰되고 있는 대중들을 향해 나름의 일깨움, 이젠 더 이상 기득권의 의도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음을 깨우쳤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차기 대통령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혀 국민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혜안(慧眼)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우선, 검증되지 않은 우상화로 대권까지 거머쥐는 일은 다음번 대선에선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와 청계천 신화에 현혹돼 탄생한 이명박 정권, 여기에 박정희 아우라에 기생해 나타난 박근혜 정권의 전철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 우상에 대한 맹신의 결과는 4대강사업과 자원외교로 포장된 나라 살림의 쪽박, 그리고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는 허위의 대통령과 별볼일 없는 일개 아녀자가 국가권력을 사유화하는 사상 초유의 헌정농단으로 귀결됐다.

국민들이 반기문에게 가장 실망한 것은 그의 브랜드인 기름장어 처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능력 부족도 아니다. 다만 믿고 기댈만한, 그리하여 어떤 순간에도 변명이나 자기합리화가 필요치 않은 국가 지도자로서의 의연함과 위엄이 너무 부족했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그의 대권도전 신념은 너무 얇으면서도 편의적이었고 국민들은 이를 일찌감치 간파했다.

반기문이 남긴 또 하나의 순기능은 단순히 여론으로 치장된 특정 후보의 득세를 일거에 불식시키고 후보 다양성을 통한 인물찾기를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꼭 안희정과 황교안이 누리는 반사이익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그동안 오랫동안 대권의 패러다임을 지배했던 기성인식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국민들의 판단에 균형감각을 키워줬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다름아닌 새로운 인물의 출현에 대한 간절함을 더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웃사이더 정치의 실험중?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난데없이 ‘대통령 씨’ 논란이 불거진 적이 있다. 고졸 출신 노무현이 경선을 통해 당시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지만 곧바로 지지도가 빠지면서 후보교체론에 시달리게 되자 ‘대통령 씨가 어디 따로 있더이까’라는 화두로 여론의 공방이 빚어진 것이다. 결과는 씨의 마이너인 노무현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우리나라에도 미국의 트럼프 신드롬같은 아웃사이더 정치개념이 본격 싹트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현재 여론지지도의 랭킹에 오른 문재인 안희정 안철수 황교안은 우리나라 씨(姓)의 빅 3라는 김(金) 이(李) 박(朴)과는 거리가 멀다. 뿐만 아니라 반기문이 사퇴하자마자 이름조차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대선 후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누가 부르지도 않았건만 산에서 내려오고 토굴에서 나오고 스스로 알아서 언론에 낯을 내는 대권 장돌뱅이들이 노리는 건 딱 두가지다. 할 일이 없어 심심해서 즐기러 나왔거나 선거정국을 틈타 자신의 정치적 연명(延命)을 꾀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기성정치에 대한 혐오라도 부추겨 일순간이나마 여론의 관심을 끈다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은 그들 자체가 이젠 우리나라 정치를 위해 뒷방으로 물러나거나 잊혀져야 할 퇴물들이다. 그래도 굳이 이들의 한가지 기여를 적시한다면 ‘대통령은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요즘 언뜻 언뜻 떠오르는 인물과 역사적 사건이 하나 있다. 16세기말 조선 사상가 정여립과 그로 인해 피바람을 불러 일으킨 ‘기축옥사(1589년)’다. 문화계의 블랙리스트가 나라를 혼돈스럽게 하고 있는 현 시국과도 맞물려 우리나라의 실체적 블랙리스트가 그 때 최초로 존재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후 국가운영의 혁명적 체제를 꿈꾸던 정여립은 모반을 꾀했다 하여 주변인들과 함께 떼죽음을 당한다. 이 때 당파의 쌍벽을 이루던 동인과 서인의 다툼 속에서 정여립이 속한 동인계는 이 사건으로 인해 무려 1000여명이나 집단학살을 당한다. 여기에 활용된 것이 정여립과 눈꼽만큼의 인연과 관계만 있더라도 예외없이 고자질당하고 추적당한 이른바 ‘정여립 블랙리스트’ 였다.

정여립의 친인척은 물론 그와 교류하고 학문을 같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나라를 대표하던 지식인, 선비들이 몰살을 당함으로써 이후 임진왜란과 한일병탄에 이르기까지 조선은 사상의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야만성이 오죽했으면 단재 신채호는 기축옥사를 “조선 500년의 제 일 사건”이라며 “이것이 전 민족의 항성(恒性)을 묻고 변성(變性)을 키웠다”고 한탄했다. 외눈박이 임금과 서인들의 횡행이 국가를 상놈의 나라로 만들었고 결국 나라까지 잃게 했다고 자책한 것이다.

사상의 대립은 국가균형의 단초

실제로 동인이라는 반대파를 씨도 남기지 않고 제거한 후 권력을 독점한 서인의 후예는 일제강점과 동시에 친일파로 변신했고 지금도 그 후손들이 국가권력의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다는 게 역사가들의 진단이다. 이 사건을 반추하면 할수록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가 무려 9000여명에 달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그 세력들이 국정농단을 숨기고 다시 차기 정권까지 이어갔을 경우 과연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몸에 소름이 돋는다. 박근혜는 블랙리스트 하나만으로도 백번을 탄핵당해도 부족하다.

정작 정여립이 40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돌연 주목받는 이유는 조선왕조 최초의 공화주의자라는 닉네임을 갖게 한 그만의 군주론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설파했다. “누구나 능력에 따라 임금이 될 수 있다.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 어찌 임금 한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있는가. 누구든 섬기면 임금 아니겠는가. 인민에게 해가 되는 임금은 죽여도 괜찮고 올바름을 실행하기에 부족한 지아비는 떠나도 괜찮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이 국가 신조였던 당시의 조선사회에서 이 말은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파격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다음 번 대통령은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 국민에게 해가 되지 않는, 나라의 공물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오로지 국민을 위해 올바름을 실행하는, 그리하여 형편없는 국가때문에 집단 학살된 세월호 학생의 영정앞에서 간교한 악어의 눈물이 아닌, 목놓아 통곡하며 펑펑 울어댈 수 있는 그런 정직하고 강직한 대통령을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더 이상 참담하고 쪽팔리는 국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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