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중순 합병 국민은행이 발칵 뒤집혀졌다. 청주지점을 포함해 전국에 걸쳐 200명에 달하는 부장급 점포장들이 무더기로 대기발령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조사역 심사역 등의 직책으로 발령받았지만 사실은 실적부진의 책임을 쓰고 ‘유배’를 당한 것. 은행의 조사·심사역은 실질적인 보직이 주어지지 않는 자리로 대개 1년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 예금과 대출을 일정 수준이상 올려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따라서 은행원들은 심사·조사역 발령을 곧 시한부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예비 조종(弔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타 금융기관 관계자는 “국민은행에 제2의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는 증거”라며 “연봉과 복리후생비, 판공비 등을 합쳐 거의 1억원에 가까운 몸값을 받아온 지점장급 간부들이 밥값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1년안에 100억원대에 이르는 예대금 운용처를 발굴해야 하는데 이는 개인이 성취하기엔 거의 불가능한 목표”라고 말했다.
결국 대기발령받은 40대 후반-50대 초중반의 고참 은행원들로선 1년후 해고통지서를 미리 받아든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지점장 승진 싫다 싫어”

합병 국민은행에 살벌한 구조조정 의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파리목숨의 신세로 떨어진 선배 부장급 간부들의 처지를 보는 국민은행 직원들은 애써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사색이 다 된 모습이다. 이 때문에 은행원의 꽃이라는 점포장 자리에 군침을 흘려야 마땅할 고참 차장들 사이에서는 “승진은 곧 묘혈을 파는 것”이라며 신분상승(?)을 꺼리는 분위기까지 형성될 정도다.
날씨가 여름철로 성급하게 치닫고 있는 요즘 합병 국민은행원들을 한겨울속 냉기에 한껏 얼어붙게 만드는 공포의 괴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 끔찍한 악몽의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는 때문이다.
“오는 9월에 국민·주택은행간 전산망이 완전히 통합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곧 점포통폐합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칠 전망인데, 행내에서는 3분의1 이상이 구조조정의 바람에 추풍낙엽 신세가 될 것이라는 살생부 예고편이 나돌고 있습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얘기”라며 “제일·조흥은행 등도 3개월 6개월 단위마다 실적평가를 해대며 은행원들을 바짝 옥죄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제2의 금융구조조정 예고탄

초우량은행이란 지상목표만을 좇는 조직의 비정한 논리가 우선순위상 고객서비스를 뒷전으로 쳐박히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은행원들을 질식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요즘 은행들이 기업보다는 가계대출에 더 혈안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는 것을 잘 압니다. 중소기업에게 돈줄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시중은행들은 자기의 눈높이로 기업여신심사를 합니다. 그러니 지방의 웬만한 중소기업은 아예 대출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대출처 발굴을 종용합니다. 돈장사가 본연의 업무인 은행으로선 당연하겠지만 그러다 보니 각 은행마다 돈떼일 염려가 없는 가계대출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파트등 부동산은 물론 아직 받지도 않은 퇴직금을 담보로 한 가계대출 상품과 카드발매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러니 금융흐름이 왜곡되고 있다는 비판은 너무 당연한 지적입니다.”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보내온 은행원들이 또다시 예고되고 있는 ‘대숙청’을 앞두고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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