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황현의 <매천야록>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류정환 시인, 충북작가회의
 

매천야록 황현 지음·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 최순실과 함께 국정을 농단하고 각종 비리를 실질적으로 지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청와대와 문화관광부가 공모해 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며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들에게 불이익을 주어온 것으로 드러나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박근혜는 5·16 군사정변을 주도했던 박정희의 딸로서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시민들은 연일 대통령의 퇴진과 비리에 연루된 재벌 총수들 처벌을 요구하며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었는데, 그 인파가 수십만을 헤아렸다. (…)

매천 황현이 아직 살아서 병신년의 역사를 기록했다면 그 일부분은 이런 모양이 되지 않았을까? 그의 저작 <매천야록>은 1864년(고종 원년)부터 1910년(순종 4년)까지 47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책이다. 두루 아는 바와 같이 이 시기 조선은, 외세가 사방에서 이리떼처럼 짓쳐들어오는 가운데 개화와 척사가 갈등하며 망국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황현은 이렇듯 절체절명의 시대를 살면서 민족공동체의 존망을 걱정하는 지식인의 눈으로 당대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야사라는 것이 본래 항간에서 사사로이 기록한 역사이므로 정사(正史)에 비해 체계가 느슨하고 기술한 자의 시각이 두드러지는 면이 있다. 특히 <매천야록>은 주로 들은 것을 기록했으므로 사실 자체가 잘못 전달되어 틀린 부분도 있고 과장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간명할지라도 당대에 벌어졌던 각종 사건을 망라하여 수록했고, 다른 기록에 없는 사실까지도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전체 6권 7책으로 구성된 이 기록물에는 대원군의 정치와 명성황후와의 반목, 민씨들의 부정부패, 외세의 침입과 민족의 항거, 개화와 척사, 동학의 봉기와 의병의 투쟁, 고종과 순종의 무능력, 북간도와 미국·멕시코·러시아로 이민 간 동포들의 고난과 활약, 지배층과 외세에 시달린 민중의 수난, 독립협회와 민권 의식, 강제적인 을사조약과 한일병합까지 숨 가쁘게 전개되는 망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닮은 과거의 역사

“이때 벼슬을 파는 일이 갑오개혁 이전보다 훨씬 더했다. 아무리 종친이나 친한 자라 할지라도 감히 은택을 입을 수 없었다. 관찰사는 십만 냥에서 이십만 냥이었고, 일등 수령은 아무리 적어도 오만 냥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관직에 오른 뒤에는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다투어 공금을 끌어다가 상환했다. 교활한 자는 상납을 더 많이 해 좋은 자리로 승진해 갔다. 아전이나 서리들도 이를 본받아 공금을 끌어다가 많은 땅과 재산을 축적하거나 벼슬자리를 노렸다.”(매천야록 제3권, 신축년: 1901, 고종 38년)

어쩌면 지금의 형편과 이다지도 닮았는가. 이러한 기록을 읽노라면 집권자가 이 지경인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일병합 조약이 강제에 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주장도 기특하긴 하나 민망한 자위에 불과할 뿐이다. 빼앗는 건 대개 강제로 하는 것이지 사정 봐줘가며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 나라 스스로 멸망할 짓을 한 연후에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멸망시킨다’는 맹자의 일갈이 다시 가슴을 친다. 그때 지배자들은 망할 짓을 한 것이다.

황현은 벼슬을 한 적이 없다. 과거에 응시해 두 번이나 장원을 했지만 조정의 부정부패와 가렴주구를 목도하고는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독서와 학문에 전념했다. 세상 경영에 참여한 적 없는 사람이지만 나라가 강탈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함으로써 지식인의 책임을 다했다.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에 남긴 시에서 그는 이렇게 탄식했다. 글을 배웠다는 것이 이토록 막중한 책무를 짊어졌다는 뜻인가, 생각할수록 식은땀이 흐른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어두운 소견으로 보아도, 정부가 역사를 독점하고 농단하는 나라의 미래는 불을 보듯 환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탄핵정국을 지켜보며<매천야록>을 다시 읽는 심사가 편치 않은 것은 그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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