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접근의 평등 중시하는 도서관 서비스의 뿌리

윤송현의 세계도서관기행
(2)북유럽 편
 

▲ 윤송현 청주아나바나협동조합 대표

핀란드 헬싱키에서 크루즈유람선 ‘실자라인’을 타면 밤을 발트해 위에서 보내고, 아침에 스톡홀름만에 들어서게 된다. 만에 들어서면 좌우로 도열하듯 늘어선 섬과 육지 사이를 2시간 이상 더 가야하지만 풍광이 빼어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물길 주변에는 곳곳에 그림같은 별장들이 자리잡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스웨덴에서는 연 5주의 휴가가 보장된다. 휴가는 다 써야지 수당으로 대체할 수 없다. 그래서 긴 휴가를 보내는 방법으로 스웨덴 사람들은 웬만하면 여름별장을 가지고 있다. 복지국가 스웨덴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라스무스와 방랑자’에 그려진 스웨덴

이런 복지국가 스웨덴은 예전부터 부자나라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20세기 초만도 스웨덴은 유럽 변방의 가난한 농업국가였다. 그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였을까? ‘삐삐’를 만들어낸 스웨덴의 국민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1910~1920년대 스웨덴의 모습을 작품에 많이 담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라스무스와 방랑자』가 대표적이다.

고아원을 탈출한 라스무스는 방랑자를 만나 동행하게 되는데, 도중에 강도떼에게 쫓기게 된다. 그리고 쫓기던 중 한 마을에 숨어들었는데 그 마을에는 사람 한 명 없는 동네였다. 동네에서 큰 집에서 들어갔다 강도들이 숨겨놓은 보물을 발견하게 되고, 마침내 강도들도 잡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바로 그 당시 스웨덴의 모습이다. 농촌에서는 남부여대하여 신대륙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는데, 마을 주민이 모두 떠나 동네가 텅 빈 경우도 많았다. 186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신대륙으로 떠난 인구가 1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렇게 가난한 농업국이었던 스웨덴이 불과 40~50년만인 1960년대에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로 변신한 것이다. 나는 그 비책의 하나를 민중도서관에서 발견한 것이다.
 

▲ 핀란드에서 스웨덴으로 가는 도중 볼 수 있는 스톡홀름만의 아름다운 풍경.

금주운동과 노동운동

유럽의 변방 스웨덴에도 산업혁명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농업환경이 바뀌면서 몰락한 소농들은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신대륙으로 이민을 떠나거나 도시로 나가 노동자가 되었다. 그러나 공장의 노동 조건은 가혹했고, 주택 등 생활 환경은 몹시 열악했다. 그리고 해를 보기도 쉽지 않은 길고 긴 겨울. 사람들은 쉽게 술에 빠져들었다. 대낮에도 거리에는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온갖 사회적 문제가 이어졌다.

상황을 바꾸려는 움직임은 크게 두 갈래로 일어났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금주운동과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었다. 금주운동은 18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금욕과 절제를 내세웠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인종, 민족, 종교를 떠나 평등을 호소하였다. 스웨덴에서는 이 금주운동 조직이 빠르게 확산되었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두 흐름을 이끌던 조직가들은 민중학습을 중시했다. 제도화된 학교와 선생에 의한 교육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 스스로 깨쳐나가는 성인교육이었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책을 읽었고, 책을 쌓아두고 돌려보던 곳이 독서방이 되고 도서관이 되었다. 1882년 스톡홀름에 노동도서관(Arbetare biblioteks)이 처음 등장했고, 이후 꾸준히 확대되어 1891년에는 협회가 만들어졌다. 1901년에는 스톡홀름에서 노동도서관을 이용하는 그룹이 무려 1만250개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다.
 

▲ 스톡홀름만을 항해하는 실자라인 크루즈.

1898년에는 독서방(Lasestuga)이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종교와 윤리서적으로 가득 찬 교구도서관이 위로부터 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뜻으로 만들어진 도서관인데 비해 노동도서관이나 독서방은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독서를 통한 자각, 권리의식과 자주의식을 키워내 스웨덴 민주주의 발전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금주운동이나 노동운동을 바탕으로 평등의식이 자리 잡는데 크게 기여했다.

1912년 스웨덴 정부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학습이나 독서활동에 대해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민중도서관지원법』을 제정하였다. 이 『민중도서관지원법』은 민중들이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도서관에도 보조금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도서구입이나 독서 프로그램에 대해 유연한 지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발렌베리와 아스프룬드

▲ 노동도서관을 알리는 안내 전단. 스웨덴의 북쪽 순스발에서 만들어진 전단이다. 책을 1주일간 빌리는데 5페니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고 열악한 민중도서관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았고, 공공도서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1910년 시의회에서 공공도서관을 짓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지만, 도서관 건립을 위한 위원회의 예산 확보 요구는 번번이 시의회에서 가로막혔다. 답보 상태를 뚫은 결정적인 계기는 발렌베리재단의 기부였다.

발렌베리가문은 스웨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재벌가이다. 지금도 스웨덴의 핵심기업들을 지배하고 있지만, 늘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사회적 기여를 해오고 있어서 스웨덴에서는 지금까지도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존경을 받는 가문이다. 발렌베리재단은 스톡홀름 공공도서관을 위해 백만 크로나를 기부했고, 이후 추가로 13만 크로나를 더 기부했다. 결국 시의회는 지금의 도서관 부지를 확보하고 군나르 아스프룬트 교수에게 건축을 맡겼다.

그렇게 스톡홀름시립도서관은 독서를 통한 자각을 추구하는 민중운동의 뿌리위에 만들어졌기에 지금도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다. 도서관은 사람들이 평등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도서관의 서비스 목표는 사람들이 인종, 연령, 학력, 직업, 경제력에 관계없이 그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도서관을 둘러본다고 하면서 문턱도 넘기 전에 샛길로 빠진 느낌이다. 그래도 이것이 스웨덴 도서관의 뿌리이고, 정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모르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건물만 둘러보고 도서관을 봤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