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출신 김성회 ‘반딧불이’ 회장, 연대 삼민투 위원장 출신
전국연합→DJ정권 청와대→이인제 캠프→뉴라이트→새누리당

▲ 지난 10일 창립한 글로벌시민포럼 김성회 대표. 그는 반기문 전 총장의 팬클럽 1호인 반딧불이의 중앙회장도 맡고 있다.
▲ 지난해 11월 개최된 반딧불이 창립총회 장면(사진 뉴시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팬클럽 ‘반딧불이’ 김성회(53) 중앙회장의 과거 경력이 화제다.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로 알려진 김 회장은 과거 화려한 운동권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뉴라이트 운동에 관여하며 사상적으로 전향한 김 회장은 1997년 대선 당시 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 캠프 활동을 시작으로 이인제 전 국회의원의 대통령선거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선거 전문가다.

충북 출신으로 알려진 김 회장은 지난 2014년 새누리당 청원지구당 당원협의회장에도 공모했다. 김 회장은 지난 10일 설립된 ‘글로벌시민포럼’ 대표에도 취임했다. 이 단체는 정책개발싱크탱크로 알려졌다. 이로인해 김 회장이 단순한 팬클럽 대표가 아니라 반 전 총장 대선 캠프의 전략가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딧불이는 반기문 전 총장의 팬클럽 1호다. 이밖에도 반존사(반기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람들), 반사모연대 등 여러 팬클럽이 존재한다. 이중 반딧불이는 팬클럽 1호라는 상징성외에도 참여인원이나 전국조직 분포 등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반딧불이는 지난 해 11월 10일 서울 LW컨벤션에서 '반딧불이'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각 지역별로 조직이 결성됐다. 충북에서는 충주, 음성, 증평, 괴산 등의 지역 조직이 결성됐다. 이 과정에서 ‘거목 반기문’이란 노래 합창 계획이 알려지며 우상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중앙회장에는 충북 청주출신의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가 맡고있다. 김 대표는 지난 해 레이보우합창단과 함께 UN본부에서 공연을 하고 반 전총장을 만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향한 386 운동권

김 회장은 그동안 한국다문화센터의 대표나  과거 이인제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지내고 뉴라이트충청포럼 창립에 관여한 정도만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행적은 알려진 것처럼 단순치 않다. 김 회장은 전향한 386 운동권으로 DJ정부시절 청와대에서 공무원을 지내고 3번의 대선을 치른 선거전문가였다.

'학생운동→노동운동→전국연합→권영길선거운동(1997)→청와대(1999)→벤처기업→이인제 의원실'→뉴라이트→선진통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은 이념의 양극단을 다 포함했다.

김 회장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82학번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대학생 시절 미 문화원 점거사건을 주도했던 삼민투(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연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1985년 4월 집시법 위반으로 처음 구속됐다.

1986년 5월 출감한 그는 곧장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다. 인터넷언론 레디앙에 따르면 김 회장은 인천과 수원등지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1987년 5월 위장취업이 들통 나 구속됐지만 2달만에 석방됐다. 석방도 잠시 그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구속돼 1년여의 옥살이를 했다.

1990년 잠시 학교에 복학해 고시공부를 하던 그는 다시 운동단체의 상근 활동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전국연합이란 단체에서 교육선전국장을 맡았다. 김 회장은 1997년 대통령 선거때는 권영길 국민승리21 대통령후보의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그렇게 운동단체의 활동가로 살던 그에게 변화가 온 것은 DJ 정부때였다. 1999년 6월 김 회장은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청와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김 회장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선거 경선 당시 예상을 깨고 이인제 캠프에 합류한다.

대부분의 운동권 출신들이 김근태 전 의원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캠프로 합류하는 분위기에서 이례적으로 이인제 캠프에 합류한 것이다.

김 회장은 이인제 캠프에 합류하게 된 것에 대해 인터넷 언론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이인제 의원처럼) 충청도 출신이고, 당시만 해도 이인제가 대세였다. 그러니 민주당 후보는 당연히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당시 이인제 의원을 지지하는 386 출신이 모여 결성한 ‘새시대개혁연대’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이 단체에는 나중에 뉴라이트로 변신한 전 민주노총 사무국장 권용묵, 임동렬 전 한국청년회의소 회장이 참여했다. 그는 이인제 캠프에 합류하기 1년 전인 2001년에는 벤처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전향한 운동권…이승만·박정희가 높게 보여

2002년 이인제 캠프에서 경선 탈락이라는 쓴맛을 본 김 회장은 이후 정치적으로 급격하게 우향우 했다. 김 회장은 2007년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칭송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능동적인 산업화를 위해 국민적 힘을 모았다. 굉장한 것이다. 박정희의 국가동원 능력은 대단했다”고 말했다.

이승만에 대해서도 “이승만에 의해 토지개혁이 강도높게 이뤄졌다. 또 국민 너나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인제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던 김 회장은 이미 2005년 뉴라이트 창립에 직접 관여했다. 당시 충청리뷰의 보도에 따르면 김회장은 장일 전 자민련 국장과 함께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모체가 되는 ‘뉴라이트 충청포럼’을 결성했다.

이후 김 회장은 이인제 전 국회의원과 정치 인생을 같이한다. 그는 2002년에 이어 2007년 이인제 의원의 선거캠프에서도 중책을 맡았다. 이인제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뒤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 새누리당을 당을 갈아타는 동안 김 회장도 함께 했다.

김 회장 본인도 적극적인 정치행보를 걸었다. 비록 탈락했지만 2014년에는 새누리당 청원군 당원협의회장 공모에 응시하기도 했다.

김성회 회장이 반기문 UN사무총과의 인연이 본격 알려진 것은 지난 해 9월 레인보우합창단의 UN공연이 계기가 됐다.

2016년 9월 13일 김 회장이 대표로 있는 한국다문화센터가 운영하는 레인보우합창단은 UN의 초청으로 UN본부가 있는 뉴욕으로 출국했다. 당시 김 대표는 합창단을 인솔했고 미국에서 별도로 반기문 전 총장과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에는 반 전 총장의 핵심 참모로 알려진 오장섭 전 장관도 같이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인터넷포탈 ‘다음’에 반기문 총장과 김성회 회장을 동반 검색할 경우 가장 오래된 뉴스는 지난 해 6월 25일이다. 하루 전인 6월 24일은 김성회 회장이 온라인 팬클럽인 ‘반딧불이’가 창립을 알리고 충북 음성에서 창립 준비위원회를 진행한 날이다.

그리고 9월 반 전 총장은 뉴욕으로 레인보우합창단 초청공연이라는 형식을 빌어 김성회 회장을 초대해 만남을 가지며 반딧불이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거뒀다.

현재 반딧불이는 반 전 총장의 귀국과 더불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단체는 운동권에서 뉴라이트로 전향한 선거전략가가 맡고 있다. 다가올 대선에서 만약 반 전총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승리이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을 김성회 대표. 그에 쏠리는 시선이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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