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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대한 시민의 권리오늘의 직언직썰/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1999년 봄 파리 출장 때의 일이다. 일요일 오전 차를 타고 시내를 돌아보는데 갑자기 경찰이 길을 막는다.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잠시 뒤 눈앞에 인라인 스케이트 행렬이 지나간다. 수천 명은 족히 될 만큼 긴 행진이었다. 차량통행이 많지 않은 주말이라고 해도 엄연한 파리 도심의 대로인데, 이렇게 차 대신 사람에게 길을 내준다는 게 놀라웠다.

인라인 매니아 열두 명이 1993년 처음 시작했던 파리 도심 인라인 행진은 1998년부터 경찰의 보호 아래 불금의 정례행사로 발전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10시에 파리 남쪽 이태리광장에서 출발한 3만여명 무리들은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행진을 시작하여 북부순환도로까지 25킬로미터를 돌아온다. 인라인 행진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종종 벌어진다.

부러운 도심 인라인 행진에 참여할 기회가 내게도 왔다. 2000년 4월 25일 서울시는 지구의 날을 맞아 광화문 앞 세종로와 종로의 차량을 통제했다. 고양시에 살던 나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챙겨 종로3가에서 내린 뒤 차 없는 종로와 세종로를 인라인으로 달리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 뭐랄까. 그 느낌을. 내가 도시의 주인임을 온 몸으로 느꼈다고나 할까. 매끄러운 아스팔트 차도 위를 거침 없이 달리던 기분은 울퉁불퉁한 보도 위를 달릴 때완 하늘과 땅처럼 달랐다.

차도를 사람에게 돌려주는 행사는 다채롭게 이어지고 있다. 휴가철에 세느강변 도로를 해변처럼 꾸며 시민에게 내어준 <파리 플라주>를 비롯해, 휴일 도심의 대로를 보행자와 자전거에게 제공하는 뉴욕의 <서머 스트리트>, 동경의 <보행자 천국>, 우리나라 여러 도시들의 <차 없는 거리> 등등 아주 많다.

1년에 한 번씩 도시의 차량통행을 전면 제한하는 <차 없는 날(car-free day)> 행사도 지구촌 행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1997년 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 라로쉐에서 처음 시작된 차 없는 날 실험은 이듬해 파리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2000년에는 유럽으로, 2001년에는 세계 차 없는 날 행사로 확대되어 서울을 비롯한 국내 여러 도시들도 참여하고 있다.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사람아닌가? 그런데도 마치 자동차가 주인인 것처럼 차를 섬기고 사람을 홀대하는 도시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차 없는 거리와 차 없는 날 행사는 도시의 주인이 사람임을 외치는 주권회복 운동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 덴마크 코펜하겐 도심부에서 얀 겔의 주도로 시작되었던 야심찬 실험이 있다. 자동차로 메워지던 도로를 하나씩 보행자전용도로로 바꾸고, 거대한 주차장을 보행광장으로 개조하는 이른바 <보행화(pedestrianization)> 실험은 40년을 이어왔고, 그 영향은 뉴욕 맨해튼의 브로드웨이와 파리 샹제리제 거리를 보행공간으로 변신케 하는데까지 이어지고 있다. 차에게 내어준 도시공간을 되찾고, 차보다 사람을 섬기는 도시를 만들자는 실험과 운동은 이제 세계 모든 도시들의 트렌드가 된 것이다.

다시 묻자.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 시민들 아닌가? 자동차도, 정치권력도, 거대한 자본권력도 아니다. 시민이 바로 도시의 주인이다. 도시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도시권(right to the city)>이라고 부른다. 시민이 원하는 도시를 가질 권리, 문제투성이의 도시를 시민의 손으로 바꿀 권리를 뜻한다. 지난해 에콰도르 키토시에서 열렸던 세 번째 해비타트 국제회의에서도 <도시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포용도시>와 함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꼽았다. 도시권은 가장 중요한 인권이기도 하다.

서울의 광화문에서, 또 여러 도시들의 광장과 거리에서 번져가는 촛불의 행진도 다르지 않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시민이 도시의 주인이라는 주권의 선언이고 행동이다. 손님처럼, 종처럼 도시를 보지 말고 당당한 주인의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자. 우리 도시만의 소중한 가치도 발견하고 문제도 직면하자. 문제가 있다면 감내하거나 방치할 게 아니라 고치고 바꾸자. 내가 주인이니까. 내것이니까.

충청리뷰  043si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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